경향신문

‘한국판 러스트벨트’ 언제 닥칠지 모른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한국판 러스트벨트’ 언제 닥칠지 모른다

‘메이드 인 USA’ 원하는 미 관세정책
국내 일자리 감소와 직결되는데도
정부·정치권, 대안 없이 넋 놓고 있어
무너지는 건 대응력 없는 노동자들뿐

공장이 없다. 숙련된 노동자도 없다. 어린이 장난감 하나 못 만든다. 중국에서 만들고 배로 날라야 하는데 물류가 멈췄다. 미국 공급망이 처한 현실을 담은 책 <공급망 붕괴의 시대>의 주된 내용이다. 이 책 말미엔 한국의 건설기계 부품업체 이야기가 한토막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건설장비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국 업체 직원은 멕시코로 공장 이전을 검토하고 있었다. 미국 건설장비 회사는 코로나19 시기 때 부품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자 미국 인근에서 부품을 조달받고자 했다. 한국의 부품 회사가 멕시코로 공장을 옮기려는 이유였다. 이 직원은 “세계화는 끝났어요. 이제는 현지화예요”라고 했다. 무려 2022년 12월 말 일이다.

‘관세’는 ‘텃세’다. 우리 ‘동네’ 와서 장사하고 싶으면 일단 돈을 더 내라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론하는 ‘상호관세’는 특히 지금까지 약속을 다 무시하고 자신들이 정한 새 규칙을 따르라는 엄포다. 상호관세의 날이 밝았다. 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관세전쟁’이 시작됐다.

새로운 질서는 이미 오래됐다. 트럼프가 거칠게 돌직구를 던졌을 뿐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 때도 미국의 방향은 같았다. 바이든 정부가 도입한 배터리·태양광·반도체 등을 미국에서 만들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은 결국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취지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은 숫자가 보여준다. 수출입은행의 통계를 보면, 한국 제조업이 미국으로 직접 한 투자금액은 2020년 23억달러에서 2024년 65억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제조업 기업이 미국에 새로 설립한 법인 수도 93개에서 162개로 74% 늘었다. 중국과도 비교해보자. 한국 제조업의 중국 직접 투자 금액은 2020년 46억달러에서 2024년 16억달러로 절반 넘게 쪼그라들었다. 제조업의 경우 중국에 설립한 신규 법인 수는 2020년 113개에서 지난해 말 147개로 3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국의 경우 사드 영향이 컸겠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으로 자금이든 회사든 옮겨가는 추세다.

트럼프는 여기에 한술 더 떴을 뿐이다. 공장 설립은 ‘기본 값’이다. 미국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까지 쓰라고 요구한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정한 메이드 인 USA를 만들라.’

한국 기업들이 기가 막힌 ‘미국의 텃세’에 당할지 모두가 걱정하는 이유는 결코 국민들이 삼성전자를, 현대차를, SK하이닉스를 아껴서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하이닉스의 이익이 떨어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미국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발빠른 대응이라며 박수 소리가 컸던 이유다.

박수 세례에 묻힌 소리는 따로 있다. ‘해외 투자’가 국내로 이익이 돌아오느냐와 국내 일자리가 유지되느냐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다고 곧장 국내로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에 공장을 만들어도 한국 부품을 가져다 쓰지 않으면 돌아올 이익이 줄어든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도 한몫을 차지한다. 2022년 윤석열 정부는 해외 자회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국내 배당금으로 송금해도 법인세를 내지 않게 법을 개정했다. 경실련이 2023년 국내 5대 기업이 해외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금을 분석한 결과, ‘감세’ 정책 덕에 총 10조원의 법인세를 감면받았을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법인세 1위는 한국은행이었다.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아니었다.

가장 뼈아픈 건 ‘메이드 인 USA’ 정책이 국내 일자리 감소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관세와 관련한 정부 대책에서 국내 일자리를 걱정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향신문은 최근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울타리 밖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해하며 이직을 준비하고 있고, 중소 납품업체 직원들은 판로를 잃을까 걱정했다. 넋 놓고 있는 건 정부와 정치권인데 무너지는 건 대응력 없는 노동자들이다. 지금이라도 ‘관세’ 논의를 일자리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내 일자리를 지키는 게 공직자의 존재 이유다. ‘한국판 러스트 벨트’가 언제 닥칠지 모른다.

임지선 경제부장

임지선 경제부장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