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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 아니 세 죽음

두 죽음이 머릿속을 맴돈다. 배우 김새론과 정치인 장제원의 죽음이다. 김새론은 죽기 전까지 황색언론과 사이버레커들의 표적이었다. 음주운전 사고 후 ‘촉망받는 배우’에서 ‘문제아’로 추락했고, 법적 처벌과 손해배상 등 져야 할 책임을 다했음에도, 틈만 나면 온라인 세계로 끌려 나왔다. 그의 죽음은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었다. 게다가 그게 끝도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자극적인 온라인 콘텐츠의 제목이 되고, 스펙터클이 되고, ‘썰’이 된다.

그리고 장제원이 죽었다. 성폭력 가해 사실을 부인해왔던 그는 피해자가 신체에서 채취한 남성 유전자형 분석 결과와 관련 동영상 등 핵심 증거를 수사기관에 제출하고 JTBC가 이를 보도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 사상구를 호령하던 “왕자”는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고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정세랑 <시선으로부터,>)로 삶을 마무리했다.

장제원의 죽음은 박원순의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정치 성향도, 평생의 행적도 달랐던 두 사람이지만, 그 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실 세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명예롭지 못하게 떠난 이의 이름을 굳이 공적 지면에 다시 소환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박원순 때 떠들던 여성단체들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예컨대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자문위원인 김홍태는 개인 SNS 계정에 “김재련씨, 여성인권전문가라더니 왜 장제원 사건에는 한마디도 안 합니까?”라며 김 변호사가 박원순 사건 때 기자회견을 하던 장면을 이미지로 첨부했다. ‘리포액트’의 허재현은 “여성단체도 김재련도 조용하다”고 비난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유튜버들과 시사평론가, 언론인들도 이런 공허한 외침을 반복한다.

그들에겐 당황스럽겠지만, 지금 장제원 사건의 피해자 대리인이 김재련이다. 여성단체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가 보수 정치인의 사건을 맡아야만 정당성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두 사건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별개의 사건이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 입맛에 맞지 않는 여성과 여성단체를 손가락질할 때, 그들의 활동에 대해 전혀 몰라도 아무 말이나 지껄일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름 한번 검색해보는 간단한 일조차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르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장제원과 박원순이 같은 수준의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박원순의 가해와 죽음이 나에게 큰 상처를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한 명의 평범한 ‘지지자’가 겪을 만한, 딱 그 정도의 혼란과 아픔을 나 역시 겪었다. 박원순을 장제원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건 오히려 지지자라는 사람들의 언행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건 박원순에 대한 사랑과 존경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의 이름을 빌려 힘을 몰아주고 싶은 ‘진영’이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밟아버리고 싶은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되레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다시 김새론의 죽음으로 돌아가보자. 조회 수 장사치들이 ‘셀프 열애설’ 등으로 그를 조롱할 때, 그 이야기가 그토록 잘 팔렸던 건 젊은 여성을 이상한 여자로 몰고 ‘멀쩡한 남자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는 서사가 상품성 있는 뉴스, 가십, 스캔들의 장르관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녀사냥 프레임은 성폭력 사건에서도 쉽게 발동된다. 꽃뱀이니, 연애니, 아무 말이나 떠들면 사람들은 게으르게도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해버린다.

세 죽음이 놓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젊은 여성을 입맛대로 대해도 된다는 태도와 ‘젊고 못된 여자’라는 오래된 허상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자꾸만 죽는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피해자로서 죽지만, 남자는 가해자로 죽는다는 현실을 반복하면서.

손희정 문화평론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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