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한길씨와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길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조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국무위원 탄핵소추 압박 배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는 이른바 ‘김어준 지령설’을 연일 제기했다. 민주당이 외부 강경파 인사에 휘둘린다는 인식을 퍼뜨리려는 여론전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이 극우 주장을 펼치는 전한길씨, 전광훈 목사와 선을 긋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김어준의 지령을 받고 이재명의 승인을 받아 국무위원 총탄핵, 무정부 상태를 만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지난달 28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국무위원들을 차례로 탄핵소추하겠다고 경고한 뒤 김씨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초선 의원들의 의회 쿠데타 배후에는 이재명과 김어준이 있다”며 “일국의 국회의원들이 직업적 음모론자의 지령을 받아서 움직이는, 김어준의 하수인들이라니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김씨를 내란음모, 내란선전·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당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김어준은 유튜브채널을 통해 이 같은 ‘일괄 탄핵’을 거론하는 발언을 거듭하며 시청자들에게 사실상 내란 범행을 선전·선동했다”며 “방송을 통해 내란 범행 실행을 결의하게 하거나 결의를 촉발한 점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친윤석열(친윤)계 의원들도 김씨 지령설을 주장했다. 윤상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박찬대, 박성준 원내 투톱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며 “이것도 민주당의 상왕 김어준씨의 지시를 받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게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5일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전광훈TV 갈무리.
국민의힘이 극우 주장을 펼치는 전한길씨, 전광훈 목사와 선을 긋지 않으면서 김어준 지령설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윤계 인사인 신평 변호사는 전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동저자인 책 발간 소식을 전했는데 전씨도 저자로 참여했다. 전씨는 부정선거 등 각종 음모론을 주장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실제로 전씨는 국민의힘 의원 주최 세미나와 토론회에도 자주 초청돼 연사로 각광받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31일 개최한 ‘헌재의 신속 탄핵, 각하·기각 촉구 긴급토론회’에 전씨를 기조발언자로 초청했다. 나 의원은 토론회에서 “전한길 강사가 왔는데 너무 감사하지 않나”라며 “전 강사의 유명한 계몽령으로 많은 국민께서 체제 전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주최한 한 국회 토론회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씨와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전씨가 전국 각지를 돌며 참여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 국민의힘 의원들도 함께하고 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광훈 목사와도 협력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서천호 의원은 지난달 2일 전 목사가 주최한 서울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공수처, 선관위, 헌재를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라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1월5일 전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 참석해 연신 고개를 숙여 전 목사에 인사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며 “전한길씨를 (국민의힘이) 스피커로 활용하는 건 진짜 바보 같은 짓”이라며 “또 전광훈이라는 사람을 하나 내세워서 그 사람에게 당의 논리를 일임해 야당을 공격하게 하면 당 자체 역량만 악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은 전씨에게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중도층의) 생각을 바꿔서 참여하게 하는 효과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