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의 4배”라는 트럼프 잘못된 주장에
미 상무장관·USTR 대표 등 만나 ‘실제 0.79%’ 설명
미 당국자는 상호관세 발표서 “13%”로 공식 언급
통상 전문가들 “트럼프와 직접 통화라도 했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 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설명에도 한국이 미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관세가 미국의 4배”라는 잘못된 주장을 한 뒤, 한국 정부는 한국의 관세가 실제로는 0.79%라는 사실을 여러차례 미국 측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호관세 발표’에서 드러난 미국의 인식엔 별 변화가 없었다. “미국 관료들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해 오류를 수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관세 정책 브리핑에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보다 2~4배 높은 최혜국대우(MFN)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의 MFN 관세는 3.5%다. 인도는 15%, 한국은 13%, 베트남은 거의 10%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비관세장벽이다. 그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같은 우리의 많은 농산물을 전면 금지한다”고 말했다.
‘최혜국 대우’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든 동일한 상품이라면 관세에 차별을 둬선 안된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을 말한다. 이 규칙에 근거한 관세율이 MFN 관세율이다. 각국은 MFN 관세율을 기준으로 무역을 하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맺은 국가엔 관세를 더 낮출 수 있다.
한국의 경우 MFN 관세는 13.4%이지만 한·미 FTA로 인해 한국의 미국 수입품 관세는 0.79%다. 이에 따라 MFN 관세를 들어 ‘한국의 관세가 미국보다 더 높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미국 측에 수차례 설명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인식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4일에도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의 관세는 미국의 4배”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즉각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 지난 한 달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잇따라 만나면서 오류를 수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달 24일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양국 간 FTA로 관세율이 0에 가깝다는 것을 계속 설명했고 이 점에 대해 러트닉 장관 등이 이해하고 확인했다”면서 “(관세 이외 다른 무역장벽에 대해서도) 잘못 알려졌거나 해소된 이슈에 대해서는 설명을 했고 미국이 잘 알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한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사실이라도 한번 머리에 입력되면 계속 그렇게 믿으면서 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의사 결정은 ‘톱 다운’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 관료들의 설명으로) 트럼프 밑의 보좌진만 제대로 알고 있어봤자 큰 의미가 없다. 전화를 하든 대면하든, 한국 측이 트럼프에게 직접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국내 사정상 쉽지 않은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국내 정치의 리더십 공백 사태가 높은 관세율의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상호관세 근거를 끈질기게 따져물어 미국 측 오류를 수정하고 ‘패키지 딜’을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은 “미국이 우리의 관세·비관세 장벽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인지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그동안에도 열심히 해왔겠지만 지금은 미국이 숫자를 제시한 만큼 그 근거를 따져물으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정치 여건상 ‘정상 대 정상’ 협상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면서 “그때가 되면 우리도 트럼프에게 시험문제를 던질 수 있어야 하며 ‘주고 받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전략적 인내’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미국 내 상황을 볼 때 이날 발표 내용이 최종안이 될 것 같지 않다”면서 “(발표된 상호관세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에서 상호관세를 다시 다듬는 작업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중국,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주고받는 보복이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지를 지켜봐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안덕근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고 “글로벌 통상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측의 관세 조치 현실화에 유감”이라며 “정부는 미국 관세 조치가 우리 대미 수출과 전 세계 교역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엄중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