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시로 꾸짖은 시인
개를 몹시 사랑한다던 한 남자
충격적인 역사 퇴행의 그날 밤
수호견처럼 사납고 맹렬하게
우린 민주의 냄새를 알아차리자
시인 진은영이 말했다. “이제 감옥으로,/ 역사의 영원한 지하 감옥으로(우리도 그자의 이름을 영영 잊고 싶네!)”. 시 ‘개들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법’(기사 아래 시 전문 첨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사칭범”이자 “개를 몹시 사랑한다던 한 남자”를 두고 한 말이다.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진은영은 프랑스 작가 로제 그르니에(1919~2017)의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2)를 읽고 있었다. 카뮈의 동료이자 스승이던 장 그르니에와 성이 같은 로제 그르니에도 카뮈의 동료이자 후배였다.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이름인 율리시스는 로제 그르니에가 파리 바크가 81번지 집에서 키우던 포인터 품종의 개 이름이기도 하다. 책은 율리시스에 관한 추억, 다른 작가들이 키우던 개 이야기, 문학 작품 속 이야기를 묶은 “일종의 개에 관한 명상집”(로제 그르니에)이다.
진은영은 시에서 인간과 개라는 두 가지 종의 양면적 속성과 실상을 들여다보며 비상계엄 사태 전후의 세상을 통찰하려 한다.
개는 어떤 존재인가. 개는 “주인이 흉악범이어도 권력자여도 역사에 패악을 부려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도” 사랑한다. “꼬리를 흔들며, 권력자의 품 안으로 뛰어”들거나 “권력자의 목소리에 따라 무엇이든 사냥”한다. 저 비상계엄의 밤 “주인이 계엄의 묘약-이라고 착각한-잔을 들이마”실 때 “국회 의사당을 드나들던 수십 명 사람들”이 “잔에서 흘러내린 독의 방울을 육즙처럼 핥”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광저로 향하다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히자 시민들이 몰려 가 연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밤샘 대치 다음날인 2024년 12월 22일 남태령 집회 모습. 정효진 기자
진은영은 “소크라테스의 인간”과 대비되는 개라는 비유를 거부하며 비상계엄 이후 트랙터 시위 농민, 고공 농성 여성 노동자(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소현숙), 성소수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핥아주”던 곳곳의 개들을 불러내 이렇게 말했다.
“개들은 누구나 사랑하지/ 벼와 사과를 키우는 농민도, 높고 추운 곳에 올라간 여성 노동자도,/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도 사랑하지/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걱정 없이 돌아오길, 1년 넘게 땅을 밟지 못한 두 언니가 일터로 곧 돌아오길/ 무지개 손가락이 제 부드러운 코를 간지럽히길 내내 기다리지”.
그리하여 “우리”는 진정 개처럼 된다. 또는 되어야 한다. 다시 광장에서 “훔치는 손은 물고 절대 놓지 않는 수호견처럼” “사납고 맹렬해”진다. “가장 남루하고 외로운 모습으로 귀환한 율리시스를 알아본 그의 개” 아르고스처럼 “민주주의의 냄새를 알아차”린다. 바로 “개를 몹시 사랑한다던 한 남자”와 다르게 개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진은영은 이 시를 ‘문화/과학’ 봄호(121호) ‘옥상의 시선’에 발표했다. 봄호 주제는 ‘내란, 광장 정치’다. 이 주제로 쓴 게 ‘개들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은영의 시집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2022)를 두고 “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평한 게 떠오르는 시다.
진은영은 2022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망 없다는 선고가 내려질 때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고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죠. 가망이 있어서 환자의 곁에서 병과 싸우고 죽음에 저항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오래 남아서 누군가와 함께 저항하는 사람이죠.” 지금 ‘그’ 자리에 ‘민주주의’ ‘자유’ 같은 말을 대입해 본다. “개인적인 수난을 겪는 사람이든 사회적 부정의로 수난을 겪는 사람이든 그 사람들 곁에 남아서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사랑에 가까운 관심과 연대의 마음이 그 수난을 조금은 작게, 조금은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뿐”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진은영은 등단 이후 늘 ‘사랑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에 관해 써왔다. 참사 희생자와 유족, 노동자·소수자와 동료의 상실, 고통, 절망을 시어로 환기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 1056명의 윤석열 퇴진 요구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5일엔 작가 414명이 참여한 ‘피소추인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 한 줄 선언’(https://url.kr/j2k18j)에도 참여했다. ‘개들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법’ 중 “‘자유’와 ‘민주주의’의 사칭범은/이제 감옥으로”로 시작하는 연을 선언으로 냈다.

진은영은 12·3비상계엄 뒤 몇 날을 무기력하게 보냈다고 한다. 작가들, 동료 시민들로부터 얻은 온기와 용기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 진은영 제공.
진은영은 e메일 인터뷰에서 “광주에서 계엄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다. 새벽엔 학생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밤새 뜬 눈으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생은 광주에서 자취한다. 혼비백산한 부모가 아이에게 전화해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진은영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고 선연히 살아있는 고통과 근심이 학생에게서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괴로웠다. 그날 목격한 역사의 퇴행이 충격적이어서 무기력하게 몇 날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태령과 한강진의 불빛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마침 ‘문화/과학’의 시 청탁을 받고 쓴 게 ‘개들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작란’ 동인 후배 시인들 제안에 한 줄 선언에 참여했다. 진은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에 빠져 혼자 허우적거릴 때마다 늘 사람들이 옆에서 등을 툭툭 치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봐, 정신 차려.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사회적 환란의 순간마다 그랬듯이 동료 작가들, 동료 시민들로부터 얻은 온기와 용기로 제가 할 수 있는 일, 그저 쓰고 말하는 이 단순한 일을 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제 보잘것없는 생각과 단어들을, 동료들의 크고 작은 바위들 곁에 돌멩이를 얹듯 썼습니다.”
하필이면 그날 밤 내가 읽던 책은
어느 개에 관한 책이었네
개를 몹시 사랑한다던 한 남자가
계엄을 선포하던 그 밤에
주인이 흉악범이어도 권력자여도 역사에 패악을 부려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도
개는 항상 그를 사랑한다네, 그도 몹시 사랑해
꼬리를 흔들며, 권력자의 품 안으로 뛰어드는 개들을
권력자의 목소리에 따라 무엇이든 사냥하는 개들을
뉴스를 보기 전 내가 그 책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문장은
“주인공이 사랑의 묘약을 마시자 개가 잔을 핥는다”*
이제 나는 국회 의사당을 드나들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주인이 계엄의 묘약-이라고 착각한-잔을 들이마시자
그 잔에서 흘러내린 독의 방울을 육즙처럼 핥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었네
그러나
우리는 개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인간이며.
한 사람의 죄와 과오를 정확히 잴 줄 알고 독배의 의미는 알고 마신다!
그런 식의 비유는 쓰지 않겠네
아니 우리는 개들처럼 생각하지
민주주의자인 그들처럼 사랑하지
개들이 프랑스어로도 독일어로도 팔레스타인어로도 미얀마어로도 중국 사투리로도 짖을 수 있듯이**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핥아주듯이
개들은 누구나 사랑하지
벼와 사과를 키우는 농민도, 높고 추운 곳에 올라간 여성 노동자도,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도 사랑하지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걱정 없이 돌아오길, 1년 넘게 땅을 밟지 못한 두 언니가 일터로 곧 돌아오길
무지개 손가락이 제 부드러운 코를 간지럽히길 내내 기다리지
우리도 광주에서, 대구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모든 장소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그러나 훔치는 손은 물고 절대 놓지 않는 수호전처럼
우리는 사납고 맹렬해지지
가장 남루하고 외로운 모습으로 귀환한 율리시스를 알아본 그의 개처럼
우리는 민주주의의 냄새를 알아차리지
강아지와 고양이 밥냄새를 연구하던 예민한 능력을 발휘하지****
바람이 뿜어내는 깃발들의 향기를 맡으며 걸어가지
시인 툴레는
이런 두 줄짜리 시를 썼네
- 우리 집 수캐의 이름은 톰이었고 암캐의 이름은 잘리였다만
아, 세상에는 잊어 마땅한 거창한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사칭범은
이제 감옥으로,
역사의 영원한 지하 감옥으로
(우리도 그자의 이름을 영영 잊고 싶네!)
그럼 안녕, 나는 시를 마저 쓰기 위해 내 책상 앞으로
잠시 안녕 우리는 집으로, 일터로, 도서관으로
내내 안녕, 다시 각자의 싸움터로
모든 세기의 겨울밤은 큰개자리와 작은개자리로 빛나는 법
너희가 사욕으로, 아첨으로, 군홧발로
민주주의와 개들의 비유를 얼어붙은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길 때마다
우리가 하늘의 별자리로, 다시 올려놓았다
*/**/***는 로제 그르니에의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2)에 나온 작품과 속담들을 인용하거나 변용한 것입니다.
****탄핵찬성 집회에 나온 깃발 중 하나인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깃발의 문구를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