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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에게 받은 돈은 공돈이 아니다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주주들에게 받은 돈은 공돈이 아니다

상법 개정 논란을 매개로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지배구조는 기업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배주주, 소액주주, 경영진, 채권자, 노동자 등의 역학관계를 총칭하는 단어이다. 기업이 사업에 자원을 배분하고, 영업활동을 하고, 벌어들인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배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중요한 특징은 ‘오너’로 불리는 지배주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장된 회사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오너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미국은 뱅가드와 블랙록 등과 같은 펀드회사들이 주요 기업의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가 최대주주로 있는 테슬라와 아마존 정도가 예외적으로 오너의 영향력이 큰 회사들이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업력이 오래된 기업들은 상속세를 납부하면서 창업자 일가의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낮아졌고, 대중화된 간접투자를 통한 펀드자본주의의 강화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너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한국과 기업 지배구조가 비슷했지만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미국 군정이 재벌을 해체하면서 오너의 지배권도 박탈됐다. 일본 재벌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군부에 물적인 지원을 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존하는 일본의 대기업 집단은 자연인으로서의 오너가 존재하지 않고, 기업 간 상호지분 보유로 지배구조가 형성돼 있다.

한국 기업, 오너 입김 강하게 작용

오너 경영 그 자체는 좋다, 나쁘다 말하기 힘든 중립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오너 경영이 빛나던 때도 있었다. 1990년대, 2000년대의 시기가 그랬다. 규제 완화와 자유로운 시장이 시대정신이던 이때 일본 기업들은 퇴보했고, 한국 기업들은 날아올랐다. 198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은 모두 관료들의 입김이 센 ‘관치자본주의’ 경제였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성공적으로 경제를 재건한 일본은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우스갯소리로 불리기도 했고, 한국의 개발연대는 ‘일본 따라 하기 전략’으로 채워졌다. 전략산업 육성과 선택적 금융지원 등을 모두 관료들이 결정했다. 일본에는 대장성이 있었고, 한국에는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비대한 관료제의 비효율과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반작용으로 집권했던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동서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가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지배적 사조로 자리 잡았다.

관료들의 개입은 구태로 간주됐고, 정부 지침을 온순하게 따라온 일본 기업들은 길을 잃기 시작했다. ‘오너’의 존재 여부는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차이를 만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본다. 한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오너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훨씬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 대기업 집단의 오너는 경제 권력을 넘어서려는 시도까지 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국민당을 창당해 국회 3당의 지위까지 올랐고,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도 정치 참여설이 나돌았고, 삼성 이건희 회장은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했다.

주식투자가 대중화된 주주자본주의의 단점은 ‘단기주의적 편향’에 있다. 기업은 ‘영속기업(going concern)’을 지향하는데, 투자자들은 너무도 쉽게 주식을 사고팔고 있다. 기업 소유주인 주주들의 주식 보유 기간이 극히 짧아지면서, 장기적인 기업가치 극대화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주의적 관점을 견지할 가능성이 큰 오너의 존재는 주주자본주의의 단기 편향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너가 무오류의 존재는 아니다. 오너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망한 기업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기업가치를 파괴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또한 기업의 의사결정이 오너 편향적으로 이뤄진 경우도 많다. M&A 과정에서의 합병비율, 물적분할 후 동시상장, 알짜기업의 헐값 공개매수와 상장폐지 등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사례는 널려 있다.

주주에 손 벌릴 땐 구체적 설명을

오너 경영이 만악의 근원은 아니지만, 그들도 완전하지 않다. 또한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한 다수의 주주들이 늘 옳은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최선의 결정을 했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배구조와 관련된 논의에서 강조돼야 할 점은 불특정 다수에게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이 돈을 대준 주주들을 의식한 경영을 하라는 것이다.

이 점은 오너의 존재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장·단기주의와도 관련이 없다. 주주들에게 지원받은 돈을 공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 대기업의 대규모 유상증자가 이슈가 되고 있다. 기업의 비전을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출자(자금지원)를 요청하는 행위는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주식시장은 그런 역할을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주주들에게 손을 벌릴 때는 자금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참에 유상증자를 할 때 감독기관에 제출하는 증권신고서를 더 구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는 지침이 마련되는 게 좋을 것 같다.

상법 개정과 관련된 논의에서 절망감을 느끼는 부분은 주주들을 바라보는 일부 기업들의 태도이다. ‘이렇게 규제가 심하면 누가 한국 증시에 상장할 것인가’라고 항변한다.

주식시장 상장은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돈이 필요한 기업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이 상장이다.

‘경영권 방어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불평한다.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경영권 방어가 필요하면 오너의 돈으로 해야 한다. 오너를 위해 회삿돈을 써서는 안 된다. 주주권 행사 과잉으로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가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도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 증시에서 주주들로 인해 기업 경영이 타격을 입은 사례가 있었다면 단 한 가지라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주주들을 기업의 적처럼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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