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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떠난 무당은 가짜일까…진짜란 무엇인가 ‘혼모노’

입력 2025.04.04 06:00

수정 2025.04.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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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부대의 반쪽짜리 대한민국

물의 일으킨 감독 감싼 ‘찐 팬’ 등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묻는 소설집

성해나 작가는 소설집 <혼모노>를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묻는다. 창비

성해나 작가는 소설집 <혼모노>를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묻는다. 창비

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368쪽 | 1만8000원

세계적인 미술가 제프의 에이전트이자 재미 한인 3세 듀이는 제프의 전시 일정에 함께하기 위해 난생처음 한국을 찾는다. 제프의 대표작인 ‘스무드’는 지름이 2m에 달하는 구 형태의 작품이다. 스테인리스스틸을 매끈하게 세공한 검은색 구는 듀이의 말대로라면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다. 작품은 서울의 한 고급 아파트 내부 갤러리에 전시될 예정이다.

미쉐린 셰프가 준비했다고 하지만 입에 맞지 않는 한식을 먹다 화제를 돌리려 근처 관광지를 알려달라는 듀이에게 아파트 관계자들은 내부 산책로를 추천한다. “바깥은 시끄럽고 번잡하거든요. 이 안에서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듀이는 고궁에 가려다 종로에서 길을 잃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휴대전화 배터리도 끊긴다. 성조기와 ‘타이극기’를 들고 있는 일군에 휩쓸린다. 그들은 한국어로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걸고 물과 떡, 도시락까지 무언가를 계속 나눠준다. 대구 출신으로 캠프워커에서 미군들에게 프라이드치킨을 팔며 영어를 배웠다는 미스터 김이 우연히 그를 돕는다. 휴대전화 충전까지 도와준 그들에게 듀이가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만 “모두 무료예요”라는 말만 돌아온다. 부지불식간에 마주친 환대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에 담긴 단편 ‘스무드’ 속 얘기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의 집회 현장에 떨어진 외국인의 모습이 블랙코미디처럼 그려진다. 축제로 보이는 현장에서 마주한 이들의 친절과 자식을 “보물”이라 표현하지만 소통하지 못하는 미스터 김의 모습에서 듀이는 무뚝뚝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미지의 감정을 느낀다. “미스터 김과 나 사이에 세워진 두꺼운 벽에 가느다란 실금이 생긴 것 같았다. 느닷없이 이상한 통증이 일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옛 세대와 젊은 이민자 사이의 진정한 소통인가. 찜찜한 기분은 노인이 듀이에게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을 광화문광장이 아닌 ‘이승만광장’으로 소개하고, 듀이가 극우 세력이 만든 기념품을 구매해 제프에게도 선물하는 상황을 보며 이어진다. 소설 속에서 듀이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좋은 하루였어요”라며 가볍게 이야기에서 사라지지만, 남는 것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독자들의 무거운 의문이다.

외부와 단절된 부르주아식 아파트에서부터 그가 축제라 생각한 광장까지 반쪽의 대한민국뿐이다. 진짜라고도 가짜라고도 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고민은 소설집에 담긴 일곱 작품에서 비슷하게 읽힌다.

표제작 ‘혼모노’는 삼십년차 박수무당 문수가 어느 날 신령으로 모시고 있던 ‘장수 할멈’이 자신에게서 떠나갔음을 깨달으며 시작된다. 장수 할멈이 때마침 자신의 앞집으로 이사 온 스무살 남짓의 ‘신애기’에게로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이어진다.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고 말하는 신애기의 도발에 문수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 문수는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를 마시며” 그저 장수 할멈을 떠올릴 뿐이다.

결말에서 벌어지는 문수의 선택은 꽤나 놀랍다. 자신은 여전하지만 장수 할멈이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짜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문수는 무엇이 진짜인지 대담한 방식으로 세상에 묻는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는 영화감독 김곤을 좋아하는 화자 ‘나’가 주인공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예술영화 감독인 김곤은 과거에 저지른 어느 사건으로 대중에게 윤리적 질타를 받고 있지만, 나의 사랑은 여전하다. 그는 감독의 팬 모임인 ‘길티 클럽’에 가입한다. ‘찐(진짜) 팬’이 되길 염원하던 그는 김곤의 사건을 옹호하며 애정을 증명하지만, 정작 김곤이 대중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성해나 작가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등을 받았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독특한 이야기로 최근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꼽힌다.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선정한 ‘20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배우 박정민은 이번 소설집의 추천사에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들로 가득하다…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고 적었다.

[책과 삶]신이 떠난 무당은 가짜일까…진짜란 무엇인가 ‘혼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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