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헌법이 정한 자구책 대신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아”
국회엔 “관용·자제 노력했어야”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내내 차분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윤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지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야당이 주도한,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해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탄핵심판 중 정지됐다”며 “피청구인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해 어떻게든 이를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당시 정치권에 대한 상황 인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는 뜻을 표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회가 헌정사 최초로 감액만 포함된 2025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한 점 등을 언급하며 “피청구인이 수립한 주요 정책은 야당의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 요구와 국회의 법률안 의결이 반복되기도 했다”고 정치권 상황을 언급했다.
결정을 선고하는 22분 내내 정면과 자신의 앞에 놓인 결정문 사이를 오가던 문 권한대행의 시선이 이때만은 심판정에 앉아 있는 국회와 윤 전 대통령 측을 번갈아 향했다. 문 권한대행은 국회 측을 바라보며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고 했고, 그다음엔 윤 전 대통령 측을 바라보며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고 했다. 문 권한대행이 국회와 윤 전 대통령 양쪽에게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정신을 상기시키는 장면이었다.
다만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이런 상황 인식을 감안하더라도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국회의 권한 행사를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실현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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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를 봉쇄한 것은 ‘본인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뜻을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취임 후 22대 총선 때까지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고 하면서 “선거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했다.
다시 정면을 향한 문 권한대행은 말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