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 3시간 뒤 ‘입장문’
윤석열 전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내려진 뒤 지지자들을 향해 “감사하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이나 수용 등 승복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반성, 사회적 갈등 수위가 최고조로 치달은 상황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파면 결정이 내려진 지 3시간 가까이 지난 뒤 대리인단을 통해 배포한 입장문에서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한남동 관저에서 TV 생중계를 통해 자신이 파면되는 결정 선고를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계엄령을 ‘계몽령’이었다고 정당화해온 윤 전 대통령은, 계엄령은 명백한 위헌 행위라는 이날 헌재의 판단에도 사과와 반성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한남동 관저서 생중계 지켜봐
지지자들 향해 “안타깝고 죄송”
당 지도부 만나 “나라 잘되길”
대통령실, 오전 11시41분쯤
취임 1061일에 ‘봉황기’ 내려
‘경호 구축’ 후 사저로 옮길 듯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관저에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났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당과 지도부에 고맙게 생각한다”며 “성원해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비록 이렇게 떠나지만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윤 전 대통령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정문에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 있던 봉황기가 오전 11시41분께 내려졌다. 파면 결정을 발표한 지 약 19분 만이다.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고 가운데 무궁화 문양이 들어간 봉황기는 대통령직의 상징으로, 봉황기가 하기됐다는 사실은 윤 전 대통령의 권한도 종료됐다는 의미다. 2022년 5월10일 청와대에서 내려지고 대통령실에 게양된 봉황기가 1061일째인 이날 자취를 감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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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청사는 종일 고요했다. 사무실에서 TV로 헌재 선고를 지켜봤다는 참모들은 망연자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관계자는 “8 대 0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게 지금 현실 맞나”라고 되물었다. 대통령실 외부에서는 이날 이른 오전부터 경찰이 청사로 향하는 차량 내부를 검색하며 출입증을 확인하는 등 혹시 모를 소요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한남동 관저를 나와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저에도 경호 시설을 마련해야 해서 이날 중 거처를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어도 대통령경호처의 경호 업무는 지원된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나온 지 이틀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