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지난 4일 인천 안남고 1학년 학생들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생중계로 지켜봤다. 헌법을 짓밟은 대통령이 파면되는 역사적 순간을 TV로 목도하고, 민주주의 의미를 새겨보는 ‘계기교육’을 체험한 것이다. 계기교육은 교육 과정에 없는 소재나 주제를 교육할 필요가 있을 때 진행하는 비정규 수업이다. 시청 후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 학교처럼, 전국 10개 시도에서 ‘윤석열 탄핵’ 계기교육이 학교 재량으로 이어졌다. 박수가 터진 교실도 많았고, 진지한 작문·토론도 이어지면서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졌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2분간 낭독한 윤석열 파면 결정문은 ‘논술문의 전범’으로 불릴 만하다. 쟁점마다 객관적 증거와 법 조항을 열거하면서 법리적 해석을 내놨고, 관형어·부사를 절제한 문장으로 정의와 단죄를 역설한 선고는 간단명료하고 단호했다. 딱딱한 법원 판결문과도 달랐다. 헌재 결정문은 ‘먼저’ ‘우선’ ‘한편’ 등 단어를 사용해 맥락과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친절하게 알려줬고, 어려운 한자나 법률용어를 최소화해 법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했다. 초등학교에서도 TV 시청만으로 무리 없이 계기교육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저기서 호평이 이어진다. 보통 사람의 간결한 언어가 주목받은 결정문에 대해,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마디마디, 조목조목 짚었다’고 평가했다. 대한법학교수회는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무리함 없이 작성함으로써 모든 권력의 원천이 되는 주권자 국민을 존중한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대통령 파면 후 불복 목소리나 사회적 혼란이 적었던 데는 ‘헌법재판관 8 대 0’ 전원일치 판결과 더불어 결정문 자체의 완결성도 큰 역할을 했다. 법리적·객관적·설득적인 판결이 강경 보수층의 반발을 진정시키고, 재판관들이 심혈을 기울여 갈고 다듬은 문장들이 사회적 수용과 안정까지 이끌어낸 셈이다. 이 정도면 살아 있는 ‘헌법 교과서’로 두고두고 기억될 만하지 않은가.
-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