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계엄이 뭔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계엄군이 언론사에 진출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로 계엄이란 시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는 조치로 시작하는데, 요즘 시대에 이런 짓이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고 믿는 자만이 무도하게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겠다고 했다. 동아일보가 공개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공소장에서 이 요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3일 계엄 선포와 함께 윤석열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언론사 네 곳과 조사업자 하나를 지정해서 단전·단수할 것을 명령했다. 행안부 장관은 오후 11시37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서 ‘언론사에 경찰을 투입하는데, 경찰청이 요청하면 조치해주라’는 요지로 지시했다. 소방청장은 차장에게 행안부 장관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도 믿기 어려웠는지 실무 책임자인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11시50분쯤 따로 전화해 ‘경찰청에서 협조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내란 우두머리로 활약하다 기소되고 결국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의 정신세계를 잠시 들여다보자.
계엄 선포문에서 그는 국회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다고 선언했다. 행정부가 마비됐다고 했다. 그래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한다고 했다. 그의 논변에 따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국정 책임자의 판단으로 자유 헌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회와 선관위 같은 헌법기구를 무단히 통제하고, 시민과 언론의 자유권을 억압해도 좋다고 그는 믿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정확하게 윤석열의 그 논변을 반박한다.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겠다는 정치적 명목을 내걸고, 헌법이 보장한 자유의 한계를 넘어 폭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특히 탄핵 결정문에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아무리 국익 훼손이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에 맞섰어야 한다”고 준엄하게 일갈했다. 우리가 살고 있고 또한 지켜야 하는 민주정이란 내적인 갈등과 긴장에 대응하고 극복하는 적응력을 갖춘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위태롭게 만든 대통령을 두 명이나 파면해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 시민들이다. 응당 함께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러나 함께 조심해야 할 점도 있는데, 욕하다가 서로 닮는다고, 시민들도 자유를 위해 자유를 제한한다는 윤석열식 논법에 무심히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발언의 자유를 제약해도 좋다는 주장은 일단 의심스럽다. 언론을 개혁하자면서 언로를 뚫고 건강한 소통을 보장하는 쪽이 아니라 언론매체를 손보겠다는 쪽으로 접근하면 이미 위태롭다. 인터넷 공론장을 정화하겠다며 소통의 경로를 무단히 가로막을 수 있는 정책을 도입하자는 건, 성공할지도 알 수 없지만 만약 성공하면 진짜 위험한 일이 된다. 제발 잊지 말자. 헌법이 정한 자유권을 제약하겠다는 시도는 아무리 그것이 헌정 자유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위헌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까지 60일도 남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자기 정파의 이익을 노려 상대방 정파의 목소리를 압도하려는 전략적 소통 행위들이 난무하리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열정적 소통이 지나쳐 생각이 다른 동료 시민의 언론자유를 제약해도 좋다는 선동이 되면 곤란하다. 정치 발언의 기회 자체를 가로막겠다고 행동하면 위험하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정의 적, 즉 자유를 강제하는 자의 행동이요, 우리가 힘을 합쳐 탄핵으로 물리친 반헌법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