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템펠호프는 폐쇄된 공항이자 광활한 시유지다. 오랫동안 공원이던 이곳에 베를린시는 도서관과 주택 공급 계획을 세웠으나 2014년 시민 반대로 무산됐다. ‘100% 템펠호프’라는 시민단체가 주도한 주민투표 결과 부지 전체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녹지와 시민 공간으로 남기기로 했다. 주거지가 불필요해서는 아니다. 그러나 시의 계획은, 임대주택의 공급 비율이 낮고 주택 임대료도 높았다. 평범한 시민보다는 민간 부동산 업자들을 위한 정책이었다. 스케이트를 타고, 반려동물과 산책하던 공원이 평범한 시민들이 갈 수 없는 곳이 되는 일. 공간에 대한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 베를린 시민들이 시 계획을 거부한 이유다.
서울에도 대규모 공공부지가 있다. 은평구 혁신파크는 약 11만㎡에 달하는 시유지다. 그러나 활용 방안은 베를린과 사뭇 다르다. 지난 2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혁신파크 기업 매각 절차를 강행했고, 서울시는 4월11일까지 4만8000㎡를 매각한다. 작은 카페와 시민들의 휴식 공간에는 이미 펜스가 쳐졌고, 머지않아 빌딩 숲이 돼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 민주주의는 없었다. 서울시는 기업 대상 설명회를 수차례 열었으나 시민 출입은 막았고, 항의가 거세지자 궁색한 시민설명회를 개최했다. 민주당 주도 주민 조사 결과 60.9%가 매각에 반대했으나 시는 이를 무시했다. 시의회에서도 다수 의원이 반대했지만 국민의힘 의원에 의해 강행 처리됐다. 더 큰 문제는 기업 특혜다. 기업이 헐값에 부지를 사도록 ‘제2종 일반주거지’로 매각한 뒤, 상업지구로 종 상향하는 특혜를 제공한다. 공공 기여도는 절반으로 줄이고, 공공 기여금도 기업에 재투자될 예정이다. 특혜 매각뿐 아니라 개발이익 환수조차 포기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을 위하는가, 기업을 위하는가.
이 졸속 매각은 한국 개발의 전형적인 문제를 반복한다. 부족한 공공토지를 매각해 비싼 주택과 상가로 채우고, 원주민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 못해 외곽으로 밀려난다. 늘어나는 통근 시간과 삶의 질 악화는 필연이다. 서울시는 혁신파크를 ‘유휴부지’라 칭한다. 그러나 연일 행사와 전시가 열리고 주민들이 저녁을 보내던 혁신파크는 과연 빈 땅이었나. 자본의 활성이 있어야만 쓰임 있는 공간이란 논리는 기만이다.
템펠호프는 혁신파크의 미래를 고민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시민이 공공 공간의 용도를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간의 가치는 소유주의 날인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가며 쌓는 역사 속에 만들어진다. 혁신파크 기업 매각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도시 공간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 서울이 그런 도시로 남을 수 있을지, 지금 우리가 결정하자.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