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주거·의료 상담 등 진행, 커뮤니티 제공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트럼프 2기 정책 등
현실 녹록지 않아…“포기하지 말고 버티자”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한 사단법인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활동가들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상훈, 지희, 소라, 선호찬 사무국장. 서성일 선임기자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며 그들의 ‘곁’을 만들어온 곳,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띵동은 지난 10년간 전국의 청소년 성소수자 1356명을 만나고 3489건의 상담을 진행하며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띵동의 활동가 호찬, 상훈, 지희, 소라(활동명)를 지난 1일 서울 중구 띵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틴세이프 스페이스’에서 ‘띵동’까지
띵동의 전신은 2013년 ‘레인보우 틴세이프 스페이스’라는 프로젝트다. 당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회와 인권 단체들이 모여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꾸렸다. 2년에 걸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본격적으로 설립 준비를 시작해 띵동은 2015년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띵동’이라는 이름은 2000년대 초반 레즈비언들이 서로를 알아봤을 때 “너 띵이야?”라고 쓰던 은어에서 가져왔다. 여기에 청소년 성소수자가 ‘띵동’하고 초인종을 누르면 환대하겠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설립된 띵동은 10년 동안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상대로 심리·주거·의료 상담 등을 진행하고, 이들이 정체성을 드러내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청소년 성소수자, 어디에 가나 ‘없는 존재’

지난 3월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행사인 ‘띵동 식당’이 서울 은평구 스테이션 사람에서 열리고 있다. 띵동 제공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가정과 학교, 더 나아가 사회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된다. 이들의 정체성은 부정되거나 놀림거리가 되고, 정부 차원의 조사나 현황 파악은 없는 실정이다.
학교는 이들에게 오히려 ‘위험지대’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 92%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혐오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고, 절반 이상이 혐오적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희는 “교실 안에서 혐오 표현이 있다고 해도 이를 제지하는 교육적 차원의 개입도 없고, 오히려 선생님들이 혐오 표현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러다 보니 ‘내가 학교 안에서 안전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해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 있다. 화장실과 탈의실, 교복 등 학내 모든 규율은 성별을 둘로만 나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지정 성별이 아닌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으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차별은 이들을 자살 위험으로까지 내몰지만 5년마다 국가가 발표하는 ‘자살예방기본계획’에 성소수자 관련 언급은 없다. 띵동에 ‘자살 위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매년 30여명 찾아오지만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나 대응책은 없다. 상훈은 “정부 차원에서는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지우고 있어 자살 대응책도 없다”며 “성소수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들이 전해졌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질 위험에 처했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여권에 ‘제3의 성별’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행정명령이 발령됐다. 호찬은 “이런 소식들로 인해 당사자들의 정신 건강에 타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도 모니터링을 하지만 청소년들이 이런 소식은 더 빨리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띵동은 청소년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나가려 애써왔다.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생물학적 남녀 구분을 벗어나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 청소년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에서 OMR 카드 답안지에 성별을 기입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자 띵동은 인권위와 교육청 등에 민원을 넣도록 도왔다.
앞으로의 10년 “띵동이 사라졌으면”
띵동의 10년 덕에 청소년들도 자랐다. 띵동 구성원들은 지원하던 청소년 성소수자가 성장해 다시 자신과 같은 청소년들을 돕는 ‘후원자’로 띵동에 돌아어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호찬은 “청소년 시기에 띵동에서 도움을 받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후원자로 돌아온 경우가 많은데, 이를 보면 어떤 때보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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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의 목표는 띵동처럼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곁을 내어주는 곳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소라는 “가족, 학교, 동네에도 띵동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더는 띵동이 필요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묻자 호찬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당장 어렵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분명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 모레가 나은 것은 틀림없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견디고, 버티고,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