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변화 가능성…주한미군 뇌관
한국, 미국의 안전장치 보장 약속 받아야
‘북한 영향력’ 러시아와 개선 실마리 찾아야
“발상의 전환 통해 새로운 대외 전략 짜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19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한국 사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추락한 대외 신인도를 회복해 나가는 시작점에 섰다. 일단 민주주의 회복력을 입증했지만 대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국제질서 대전환기와 맞물려 정상외교 공백의 한계가 가중됐다. 한·미 동맹의 형질 변화가 거론되는 데다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국 관계설정 문제도 한층 까다로워졌다. 차기 정부가 발상을 전환해 새로운 대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한·미 동맹 변화 가능성 대비해야
윤석열 정부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가치 외교’ 기조에 보조를 맞추며 운신의 폭을 제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상계엄 정국에서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며 상황은 악화했다. 새 미국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거래주의’ 외교 색채를 뚜렷이 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 시대가 저물고 다극의 ‘강대국 정치’로 회귀한다는 분석이 많다.
이는 한국 외교·안보에 중대한 도전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미 동맹의 본질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한미군 문제가 주요 뇌관으로 꼽힌다.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은 시간 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의 위협 인식을 두고 온도차를 보이는 점이 불안 요소다. 한국은 북한을, 미국은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해 중국 견제에 활용하려고 시도할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한국에 대중국 압박을 위한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 공동성명에는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 지지’ 표현이 처음으로 담겼다. 미국이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나 중거리미사일의 추가 및 신규 배치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모두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조치다.
안보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2017년 사드 배치를 고리로 삼아 한국에 보복 조치를 가했던 전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없는 한반도를 상정한 대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미 동맹 체제 자체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사 입장국이나 글로벌사우스 등과의 다층적인 연대 강화로 미국발 충격 완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는 7일 “기존의 동맹 중심에서 벗어나 자강을 기초로 동맹과 국제연대를 결합하도록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사이 유연성 발휘 정책 마련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 속에 중첩점을 찾아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한·미 동맹 공고화와 함께 최대 교역국이자 북한 문제 등 한반도 평화 유지에 영향력이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해야 한다. 미·중 사이 공간을 확보해 유연성을 발휘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중국 및 일본의 역내 영향력 확대 움직임 등을 감안하면 미국과 동맹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미·중 사이 전략적 자율성의 경계를 어디로 둘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왼쪽)이 지난 2월7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타이양다오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접견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윤 전 대통령과 강성 지지층이 확산한 혐중 정서를 가라앉히는 것도 과제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과 여론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라며 “더 나빠지면 정부가 대중 정책을 펴는 데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방한 여부가 한·중관계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내년 APEC 의장국이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시 주석이 방한해 한국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빈방문 형식을 취하고 한·중 정상이 구체적인 성과물을 도출한다면 양국 관계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방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시 주석 방한이 무산될 여지도 있다.
일본 호응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일본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지도 중요하다. 한·일은 올해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다. 차기 정부 출범 직후가 될 오는 6월 말 양국 대사관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심을 끄는 건 한·일 정상의 행사 참석 여부다. 2015년 50주년 당시에는 양국 정상이 각각 상대국 대사관의 기념행사에 자리해 축사를 발표했다. 올해도 같은 장면이 연출되면 긍정적인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사 문제 등 여러 변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몰두해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에서 양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 7~8월로 예상되는 일본 사도광산의 공동 추도식이 한·일관계 흐름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일본 패전 80년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일본 총리가 ‘전후 80년 담화’에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의 내용을 담을지 주목된다. 다만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담화를 내지 않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11월24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한국 정부 대표자와 관계자들의 자리가 비어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종전 후 경제협력 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러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두고 대러 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남북 대화 채널이 끊긴 상태에서 러시아는 북한 내부 상황과 의중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 이후를 대비해 러시아와 여러 수준에서 전략적 소통을 재개해야 한다”라며 “종전 이후 경제협력을 모색한다면 러시아 시장에서 영향력을 회복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전 이전이라도 양국 관계의 긍정적인 여건 마련을 위해 한·러 간 직항 노선을 되살리는 방안도 두 위원은 제안했다.
“관성에서 탈피해 새로운 전략 성찰해야”
국제질서 변화 속에 한국 정부가 기존 문법에서 탈피하고, 실용외교 기치 아래 새로운 국가전략을 성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인식에 기반한 미국 중심의 대외 접근법은 다극화 질서에서 그 효용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향후 외교·안보 문제가 복잡한 고차방정식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 동맹 강화’, ‘적당한 균형외교’ 등 기존의 틀을 반복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됐다”라며 “우리 고유의 ‘전략적 안정성’ 개념을 마련하는 등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외정책 수립 이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쳐 합의점을 도출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국회의장이 특별위원회를 구성,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인사들이 1년 정도 연구를 통해 10~20년을 바라보는 정책보고서를 만들었으면 한다”라며 “이후 행정부가 정책보고서를 정책 수립에 참고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여러 다른 시각들을 좁히고 접합점이나 공통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출연연구기관인 미래연구원은 최근 비슷한 성격의 외교·안보포럼 구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회의원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초당적인 합의를 통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