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개헌의 진짜 의미, ‘사회적 약속’의 복원](https://img.khan.co.kr/news/2025/04/07/l_2025040801000206100020851.jpg)
개헌은
내란 세력 청산·방지라는
사회적 약속 복원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해결책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개헌론 주창 세력은
대통령 중임제 도입 등
임기 중심의 개헌 추진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개헌특위는
정치인만의 장이 아닌
시민 참여와 결정을
보장하고 구현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제 개편의
내용과 방식이
한층 더 창의적일 수 있다
개헌의 진짜 의미는 ‘사회적 약속의 복원’이다. 서로의 생각과 처지가 달라도 함께 지켜야 할 규범의 확인과 (재)설정을 위한 과정이자 내용의 마련이다. 민주공화제 유지를 위한 사회 공통의 기반과 정신을 다시 수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만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왜 다시 개헌 의미 운운이냐고?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이 결정되고 대통령 선거 국면이 열리자마자 개헌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공을 쏘아 올렸다. 지난 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시행하자고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12·3사태 직후부터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 개헌 논의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탄핵 인용이 지체되면서 파급력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우 의장의 공식 제안으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발화자의 위상을 감안할 때 그렇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하느냐이다.
우 의장은 군 병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비상계엄해제 조치를 신속하고도 적법하게 이뤄냈다. 이에 힘입어 국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임과 동시에 명실상부한 유력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탄핵 찬성과 반대를 둘러싸고 여야 간 대치와 사회갈등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국정협의체 운영을 주관하며 국정 공백과 정치 실종 사태의 악화를 제어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여줬다. 여야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그리한 게 아니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신속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지속적으로 강력히 촉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헌법 준수 차원에서 그리했다. 여느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무도하고 무례한 언동도 취하지 않았다. 엉망진창의 한국 정치이지만 세계 10위권 국가의 국회의장에 걸맞은 품격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우 의장이 대놓고 한 개헌 제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 여론에 끼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위원이었던 정청래 의원이 우 의장의 개헌 제안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나선 것도 그런 우 의장의 위상을 염두에 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친이재명계 유력 인사이기도 한 정 의원으로서는 이재명 대표의 대권 차지가 현실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 축소가 핵심인 개헌 논의를 우 의장이 주도해 확산되는 것을 반길 수가 없다. 김부겸, 김동연, 김경수 등 비이재명계 대권 주자들이 개헌을 기치로 입지를 구축하려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 선호 여부와 상관없이 바야흐로 개헌 정치 국면이 시작됐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권은 물론 학계도 자기 이해관계와 생각을 떠나 개헌에 무관심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재명도 어쨌든 개헌 수용할 것
개헌 정치가 파급력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 의장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명계 유력 대권 주자들뿐만 아니라 김형오·정의화·정세균·정대철·손학규 등 전직 국회의장들을 포함한 원로 정치인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 원로 정치인은 출신 정당을 떠나 국회의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대체로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초당파적 입장과 태도를 취했으며 온건합리적인 성향의 정치인들로 여겨졌다. 이런 이들이 함께 모여 개헌론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은 개헌 찬성 여론 조성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탄핵 찬성 운동을 주도했던 사회운동 진영 역시 개헌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당내 유력 대권 주자들 중심으로 개헌론을 적극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몰락을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으로 돌리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폐해론은 헌법학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당시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보충의견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원인론’을 제시했던 바 있다. 동시에 지금 국면에서 개헌은 내란 세력 심판론 등을 덮는 데 유용한 ‘거대 의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탓에 이재명 대표 세력도 입장을 바꿔 어떤 식으로든 개헌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수용의 폭과 수준이 문제일 따름이다. 다수 지지를 얻어야 대권을 차지할 수 있는 처지에서 다수 여론을 점할 가능성이 큰 개헌에 홀로 반대할 수만은 없다.
현재 개헌 여론조사 지표상으로만 볼 때 찬성보다는 반대가 더 높다. 내란 세력에 대한 형사처벌이 아직 안 된 상황에서는 내란 세력 청산 우선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친명 세력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의 집권 정당성을 높이는 길이 내란 세력 청산론 주창에 있다고 볼 공산도 크다.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일수록 개헌 찬성보다 반대가 높은 이유다. 거론되고 있는 당 안팎의 경쟁자들에 비해 이재명 대표는 크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지 확장을 이유로 개헌마저 수용하고 나설 이유가 크게 없는 것이다. 즉, 대선 승리에 필요한 다수는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 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 정당과 후보가 없는- 중도층 지지에 적극 나설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재명 대표의 대권 획득 가능성을 약화하는 오판의 산물이다. 특히 내란 세력 청산과 개헌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오산이다. 그리고 개헌론이 결국 내란 세력 청산을 위한 것으로 연결돼 다수의 찬성 여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간과한 오판이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작금 개헌의 진짜 의미는 사회적 약속의 복원이다. 내란을 기도하는 위헌적 반체제 세력이 등장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한 민주주의 규범의 준수와 헌정체제 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탄탄히 하는 약속 말이다. 그런 약속을 복원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겪을 수 있는지 12·3사태를 통해 생생하게 목격했다. 아니, 여전히 목격 중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속 복원의 중요성을 절감했으며, 그것을 복원해야 한다는 다수 시민의 요구와 의지의 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시민 참여로 사회 공통의 기반 강화
이때 개헌은 내란 세력의 청산과 방지라는 사회적 약속을 복원하기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 방식의 해결책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문재인 정권 시기 정서적 정치 양극화와 윤석열 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진 적폐 청산 시도의 실패가 시사하는 바는, 내란 세력 청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적을 계속 적으로 두고 적대감을 키워 정치를 끊임없이 과거에 매몰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란 세력의 청산을 원하지만 정치사회적 갈등 해소를 통한 상황 개선을 우선 원하는 사람의 냉소와 돌아섬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여기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막대기를 반대로 심하게 구부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란 세력 청산이란 과업 자체가 거부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현실의 정치적 삶에서 가능한 것은 이미 벌어진 일에서 교훈을 얻어 현재를 개선하고 그 효과가 불확실하고 두렵다 해도 용감하게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내란 세력 청산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개선과 미래의 만남을 의미하는 새로운 과업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의 가장 유력한 이름이 바로 개헌이다. 내란 세력에 대한 형사 처벌은 그 절차가 진행될 것이기에, 그것을 넘어서서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공할 새로운 사회적 목적의 설정과 제시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우 의장을 비롯한 개헌론 주창 세력은 대통령 중임제 도입 등 임기 문제를 중심에 두고 개헌을 추진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4년 중임제 도입이나 3년으로의 임기 단축 조치가 왜 대통령제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도인지 제대로 알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의문인데, 주창자들마저도 잘 모른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왜냐면 그에 따른 효과가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개헌에 성공할 수도 없고 진짜 의미를 충족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당장은 임기제 조정으로 귀결될 개헌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내란 세력을 궁극적으로 청산하는 미래지향적인 계획의 일환이며 시작임을 국민들에게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제시의 경로와 방식이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개헌특위를 정치인들만이 아닌 시민의 참여와 결정을 보장하고 구현하는 식으로 꾸려야 한다. 대통령제 개편의 내용과 방식이 한층 더 창의적일 수도 있다. 설사 아니라고 해도 사회 공통의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