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파면됐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파면의 이익이 손실을 압도”한다며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에 윤석열을 권좌에서 쫓아내는 선고를 내렸다. 피와 땀으로 국민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를 총칼로 짓밟으려던 시도는 무위에 그쳤다. 헌법의 판단이 끝났고, 형법의 시간이 됐다. 내란 수괴 윤석열과 공범들은 수사와 재판을 거쳐 합당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 밤잠을 설치고, 스트레스로 100일 넘는 시간을 보낸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는 일 또한 이어져야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과업 쌓이고 쌓여
6월 초에 우리는 다시 선거로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정치인들의 대선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비상계엄이라는 국가폭력의 가능성을 해체했고,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가 진행되니, 정치의 시간 역시 오는 것일까.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의를 따르자면 정치는 “사회 전체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이 70년이 넘은 정의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란이 많지만, 핵심만 추려보자면 사회 전체의 가치, 권위, 그리고 배분일 것이다. 정치의 목표는 정치를 통해 부분적 이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가치 달성에 있고, 절차적 측면에서 의사결정 이후에는 법제도의 권위로 집행한다는 것이다. 가치의 배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있고, 다른 이익과 지향의 문제를 놓고 조율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헌재의 결정문은 정치로 풀어야 하는 것을 허구의 비상사태를 구실 삼아 계엄으로 해결하려던 윤석열을 수차례 꾸짖었다. 예컨대 윤석열이 구실로 삼았던 예산 문제는 의회민주주의가 탄생한 이래 전 세계 정치인들이 100년 넘게 정파를 나눠 다투면서 협상해온 주제다. 예산안 때문에 여야가 다투는 바람에 국회 문을 열지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결국에 ‘막후’에서 조율해 ‘극적 타결’되곤 한다. 파행으로 흔들리는 ‘사회 전체’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윤석열의 파면을 통해 거리정치의 상징인 응원봉을 내려놓아도 된 지금, 대선의 시간은 다시금 정치인들에게 유혹을 줄 것이다. 화끈한 ‘적폐 청산’과 ‘탄핵 반대 세력의 결집’은 분명한 선거 구도 설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국가 정상화의 과업은 우리에게 분명히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봄, 정치를 통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업에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선 통해 얽힌 사회적 의제 풀길
얼마 전 여야 합의로 통과돼 공표된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그 논란은 전형적으로 정치가 해결해야 할 ‘가치 배분’의 협상정치가 필요한 지점을 드러낸다. 13%의 보험료율과 43%의 소득대체율 뒤에 근시일 내 보험료 납입이 끝나고 연금 수령을 시작할 장년세대와, 앞으로 오랜 기간 보험료를 내야 하는 청년세대의 이해관계는 분명히 엇갈린다. 전 세대 매년 0.5% 인상은 미봉책이다. 기금 고갈의 쟁점과 인구추계의 문제까지 살펴보면, 보완해야 할 지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지점마다 이해당사자들의 이익 조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 제기를 ‘세대 간 갈등 조장’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조장된 갈등’을 풀기 위해 당장의 재정을 투입하는 방향, 자동조정장치, 국채 매각, 3층의 연금 구조(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에 대한 재설계 등을 조합해 이해당사자 청년세대까지 포괄하는 해법을 찾아내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지급 명문화’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다. 때를 놓치면 연금 불신론자들이 자랄 따름이다.
사회적으로 중대하고 시급해 정치가 다뤄야 할 정책적 쟁점들의 공통점은 첨예한 다툼 때문에 교착에 빠지기 쉽고, 상대가 있으니 협상해야 하며, 전문성은 물론 사회적 공론을 적절히 수렴해야만 생채기가 나지 않는 점에 있다. 선명한 대안을 내기도 어렵기 때문에 인기를 얻기도 쉽지 않다. 유혹을 이겨낼 정치인이 필요하다.
3년간 무도한 정권의 만행 때문에 빚어진 일들 말고도, 조정과 협상 부재 속에서 중대한 정책 입법이 국회에 수도 없이 쌓여 있다. 대선 기간의 장점은, 중요하지만 어려운 사회적 쟁점을 대선 후보가 국가적 의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정상화는 사법에 맡겨두고, 대선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의제들을 어떻게 풀지에 대한 정치인들의 생각들이 격의 없이 토론되고 복안을 찾길 바란다. 정치의 시간이 와야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