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경비 지출 부산시에 법원 “손배 책임 있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인정, 부산시 항소 기각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선고, 법무부는 수용할까

2022년 8월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연생모씨가 정근식 위원장의 발표를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나왔다. 그간 법원은 판결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왔으나 지자체에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온 사실이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9-1부(재판장 황승태)는 지난 2일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유족 12명이 대한민국과 부산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1심과 동일하게 국가와 부산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모두 인정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에 따라 일반 시민과 어린이를 불법 납치·감금해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다. 부산시는 부산시재생원설치조례에 근거해 1975년 7월 부산 사상구 주례동의 ‘부랑인 수용시설’ 형제복지원 측과 위탁계약 맺었다. 1986년 12월까지 계약이 이어졌다. 부산시는 이와 관련된 사무에 필요한 경비도 지출했다. 피해자들은 이 수용시설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 동안 붙잡혀 노동력 착취, 구타 등을 당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2년 8월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진실규명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후 피해자들과 유족 측은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1심 재판부는 ‘지자체는 국가로부터 받은 금원으로 그 사무에 필요한 경비를 지출하는 자이므로, 국가배상법상 비용부담자로서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지자체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들의 배상액은 국가 책임을 인정한 앞선 사건과 동일하게 수용 기간 1년에 8000만원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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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 부산시는 “사실상 국가의 하부기관이었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당시 부산시는 여전히 지자체로서 존속했고, 국가의 하부기관이 됐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국가사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인권침해 행위를 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봤다. ‘국가의 책임 인정이 부당하다’는 법무부의 항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자료 액수가 적다는 피해자들의 항소는 일부 받아들였다. 형제복지원 퇴소 후 수개월 만에 사망한 것은 위자료 증액 사유로 인정하고 피해자 1명에 대해 3000만원을 추가로 증액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는 “그간 대한민국 책임 여부만 가렸는데 지자체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1심에 이어 2심에서 처음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며 “지자체의 책임 인정 사례가 처음이더라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이를 수용할지는 법무부의 상고여부로 가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액을 인정하는 확정 판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