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시민들이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고진수씨를 바라보면서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이예슬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탄핵 촉구 집회’가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광장에 나서는 시민들이 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에 힘을 싣는 시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탄핵 촉구 집회로 시작된 시민들의 연대는 탄핵 이후에도 또다른 투쟁의 현장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이 주최한 ‘윤석열 파면 기념 파티’였다. 시민들 60여명도 모였다.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삼겹살과 두부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거리에서 울려퍼졌다.
이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동지’다. 한 여성이 “동지, 과일 좀 드세요”라고 말하자 “동지가 너무 많아서 대체 누구를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이들은 서로 이름과 나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서로가 처음 만난 장소는 기억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세종호텔 앞에서 처음 만난 동지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세상에 지지 말아요’ ‘바위처럼’ 등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씨를 바라보며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고씨도 농성장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들어 보이며 호응했다.
흥겨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한 여성이 “윤석열은 감옥으로”라고 외쳤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고진수는 땅으로”를 외쳐 화답했다. 이들은 익숙한 듯 “지혜복을 학교로” “Free th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그간 탄핵 촉구 집회의 무대에서 시민들이 외쳐 온 구호들이 세종호텔 앞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세종호텔 앞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고진수씨가 지난 7일 밤 ‘윤석열 파면 기념 파티’ 중인 시민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예슬 기자
이들은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시민 조찬우씨는 “파면의 순간 저 역시 안도의 눈물을 흘렸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대통령 하나 끌어내는 것은 우리가 해 나가야 할 사회대개혁에 비하면 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 같이 손잡고 좋은 세상을 위해 나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이들은 “파면 이후에도 광장의 연대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 김모씨는 “윤석열 파면으로 모두 집에 가더라도 저는 광장에 남을 것”이라며 “여성 차별, 청소년 딥페이크 성범죄, 한국옵티칼, 거통고(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세종호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파면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교 연구원 권민재씨는 “저는 10년 전만 해도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사회대개혁을 말하는 시민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고진수·소현숙 동지의 투쟁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고공 농성자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까지 연대할 것”이라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고된 세종호텔 노동자 고진수씨는 지난 2월13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은 오는 10일에도 거통고조선하청지회·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와 함께 세종호텔 앞에서 ‘고공농성 승리 투쟁문화제’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