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을 두고 월권 논란이 제기된다. 특히 이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측근이자 12·3 비상계엄 직후 이뤄진 ‘안가 회동’ 참석자여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은 “위헌적 권한남용”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오는 18일 임기가 끝나는 문·이 재판관 후임으로 두 사람을 지명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위법·위헌 결정에도 미임명 상태를 이어가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이날 뒤늦게 임명했다. 대법원장 제청과 국회 동의 과정을 마친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도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한 권한대행은 “또다시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필수 추경(추가경정예산) 준비, 통상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며, 국론 분열도 다시 격화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추경 준비 등을 언급한 것은 민주당 등의 국무위원 추가 탄핵소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헌재 구성을 현 정부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한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지명권 행사를 두고 논란은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할 권한대행이 적극적 인사 조치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26일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마 후보자 등에 대한 형식적 임명 절차조차 보류했다. 100여일 뒤에는 입장을 바꿔 직접 대통령 인사권을 행사하며 헌법기관 임명에 나선 것이다.
헌법재판관 임기는 6년으로 오는 6월3일 선출될 새 대통령의 지명권을 빼앗은 셈이 돼 ‘알박기’란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 동기로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징계취소 소송을 맡기고 정권 출범 후 법제처장을 맡긴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핵심 장관·참모의 안가 회동에 참석해 2차 계엄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크게 반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권한대행이 자기가 대통령이 된 것으로 착각해 오버했다”고 비판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한 권한대행이 위헌적으로 권한을 남용했다”며 “내란 동조세력의 헌재 장악 시도”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의 이번 지명에 대해 권한쟁의심판 및 효력정지 임시처분신청과 함께 한 권한대행에 대한 재탄핵소추 카드도 검토한다. 우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 “국회는 인사청문회 요청을 접수받지 않겠다”며 한 권한대행의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마 후보자 임명은 “잘못된 결정”이라면서도 이완규·함상훈 후보자 지명에는 “한 권한대행의 용단이자 용기”라고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처장에 대해 “그야말로 미스터 법질서”라며 “헌법재판관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엄중한 시기에 책임감을 느낀다. 후속 절차를 잘 준비하겠다”며 “헌법재판관이 된다면 헌법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