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김장하 장학생’ 문형배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김장하 장학생’ 문형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소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소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4일 대통령 윤석열 파면을 선고한 뒤로, 한 사람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장하 선생(81)이다.

김 선생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한약방 점원으로 일했다. 낮에는 약재를 썰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19세에 한약사 시험에 합격했다. 1963년부터 한약방을 운영하며 값싸고 효험 있는 처방으로 큰돈을 벌었다. 1984년 가산을 털어 진주 명신고를 설립해 7년 뒤 국가에 기증했다. 형편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는데, 다 합쳐 1000명이 넘는다. 지역 환경운동, 여성 인권, 문화예술 후원도 아끼지 않은 진주 시민사회 운동의 버팀목이었다. 김 선생은 2021년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면서 남은 재산 34억원을 경상국립대에 기탁했다. 2022년 한약방 문을 닫았다.

김 선생은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고 했다. ‘줬으면 그만’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도, 자리를 탐하지도 않았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이라는 김 선생은 나눔의 씨앗이 각자의 일상에서 열매 맺길 바랐다.

문 대행은 고교·대학 시절 김 선생의 장학금을 받은 ‘김장하 장학생’이다. 1986년 사시 합격 후 김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갔더니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고 한다. 문 대행은 2019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분 말씀 실천을 유일한 잣대로 살아왔다. 법관의 길을 걸으며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데 전력을 다했다”며 “재판관이 되어도 초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은 헌정질서 파괴자에 대한 응당한 처분이자, 국민 상식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문 대행은 “선생은 자유에 기초해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해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하게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다”고 했다. ‘김장하 정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김 선생은 진주 시민만의 ‘어른’이 아니다. 험난한 시대에 김 선생의 삶은 우리가 보고자 했던 어른의 모습이다.

2022년 12월 MBC경남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2022년 12월 MBC경남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