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경제적 대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은 세계 자산시장과 기존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국내에선 극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대외 환경 변화로 수출 주도형 성장 모델은 한계에 직면해 있다. 또한 내수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안팎의 복합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이제 정치·경제의 틀 자체를 아예 다시 짜야 할 때다. 새 정부는 바로 이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 수출 부문과 부동산 내수에 기대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장기 불황에 빠졌고, 지금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전례를 의식한 듯 2021년부터 부동산 개발업체의 과도한 차입을 억제하며, 2008년 ‘4조위안 부양책’ 이후 지속해온 부채 중심 투자 주도형 성장에서 첨단산업 중심 기술주의적 성장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고 다소 인위적인 전환의 대가는 현재로선 성장 둔화다.
최근 한국은행과 한국금융연구원 공동 콘퍼런스에서 한은 총재는 부동산 금융 쏠림이 신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실제로 2024년 기준 민간 신용 절반(49.5%)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필자가 산정해봐도 통화량(M2)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의 순환 변동은 2020년 후반 이후 진폭과 흐름이 거의 일치하며 매우 높은 동조성을 보인다. 코로나19에 따른 완화적 통화정책과 저금리가 많은 자금을 부동산으로 유도한 것이다.
이 시기 서울 아파트 매수세는 30~40대가 주도했으며, 특히 30대 부채 증가가 두드러졌다. 반면 50대 이상은 매수와 부채 모두 감소세다. 문제는 30~40대는 높은 부채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서 소득이 있어도 소비 여력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가계 부채를 지렛대로 한 과도한 부동산 매입은 고령화에 따른 소비 감소와 맞물려 내수 위축을 더욱 심화하고 결국 성장 둔화와 자산 불평등,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사례에서도 1990년대 장기 불황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가계 부채가 소비를 제약한 점이 지목된다.
금융위원회는 가계 부채 증가에 대응해, 지난해 7월 “가계 부채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에도 이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득 기반 총량 관리 기조를 공식화한 것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은 가계 소득에 따라 대출을 제한, 부채를 조절해 금융기관 건전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이러한 소득 기반 미시적 규제와 함께 총량 수준 거시적 부채 관리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일본은 1990년 3월 17년 만에 부동산 관련 융자 총량 규제를 도입해 부동산 대출 증가를 총대출 증가 이하로 제한했다. 이 조치로 부동산 가격은 급속도로 안정됐지만, 갑작스럽게 제도를 시행하면서 경기와 민생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올해 1월 한은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란은행이 주도한 일원화된 건전성 감독체계 구축에 따른 강력한 대출 규제로, 영국의 가계 부채 비율이 2009년 GDP 대비 96.9%에서 2023년 78%로 낮아졌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선 서울 강남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둔화된 상태이다. 여기에 건설업 침체와 내수 부진이 매우 심하다. 앞으로 두 달 후 출범할 새 정부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이에 대한 해법으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새 정부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를 정책 기조로 채택하면 가계 대출 증가가 소득 증가 속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가계의 자산 불평등을 심화하고, 성장 둔화와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소득 기반 미시 규제와 총량 규제 강화는 부동산 부양을 통한 경기 회복과 가계 부채 억제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정부에는 정책적 딜레마를 안겨준다. 그래서 대내외 여건이 급변하는 복합위기 대격변 시기에 맞설 수 있으려면 여유 자금이 더 생산적 부문으로 흐르도록 유도하고, 경제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위험관리’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