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 연구자 박준
“한국 정치 양극화, 용납 가능한 수준 넘어”
“정치인 품성보다 정치 시스템 중요”
“연립정부 가능한 다당제 민주주의로 가야”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공직역량연구실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행정연구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였고, 이후 4개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테스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한국 정치의 제1과제는 정치 양극화 해법 마련입니다. 대선에선 정당들이 상대를 악마화하지 말고 정책을 통해 경쟁했으면 합니다.”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공직역량연구실장은 한국의 정치 양극화와 갈등 문제를 연구해온 정치학자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간 한국 사회의 정치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상대에 대한 낙인찍기와 적대감이 한국 정치의 동력이었기 때문”이라며 “숙의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지난달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행정연구원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했고, 9일 전화 추가 인터뷰에 응했다.
박 실장은 여야 지지자의 사회·경제 이념은 비슷하지만 안보 이슈 인식에 따른 적대 정서가 사회·경제 이념의 동질성을 압도한다고 본다. ‘이념 양극화’는 크지 않은데도 ‘정서적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설명이다. 박 실장은 “안보 이슈의 극명한 균열은 친일이라는 낙인찍기, 빨갱이라는 낙인찍기가 일제 해방 이후 계속 이뤄져 왔기 때문”이라며 “역사의 거대한 균열이 그대로 정당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분열됐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를 해보면 경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고, 소득 재분배와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진보·보수 응답자가 모두 찬성한다”며 “하지만 가령 북한이나 중국을 너무 싫어해서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정책을 펴는 정당은 설사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 정책을 추진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예로 들며 “한국사회 발전과는 별 관계가 없지만 아군과 적군을 구별짓는 아주 좋은 소재”라며 “우리 편을 더 결집시켜 열광적인 확신에 빠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정치 양극화가 임계점을 넘는 사건으로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를 주목했다. 그는 “이 사태를 보면 정치 양극화는 용납 가능한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며 “과거와 달리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이 직접 폭력 행사로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규범이 붕괴된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파면한 지난 4일 서울 안국역 일대에서 생중계로 선고를 지켜보던 탄핵 찬성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용산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탄핵 반대 시민들이 오열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성동훈 기자

서울서부지법이 지난 1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법원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다 경찰 진압에 놀라 도망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와 관련해 박 실장은 ‘정당의 팬덤화’가 정치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우려했다.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작은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다. 박 실장은 “정당이 아이돌 팬덤처럼 운영되면 민주주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며 “자기 진영의 ‘전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이 침묵하는 다수보다는 열렬한 소수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는 활동이 나타나게 된다”며 “결국 극단적 소수의 주장이 과대대표된다”고 했다.
박 실장은 정치 양극화 극복 방안으로 “대화와 타협은 정치인의 품성에 맡길 문제는 아니다.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은 연립정부가 가능한 다당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정치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상대 진영의 유권자를 포기할 수 없는 제도를 만들면 지금처럼 상대를 악마화하는 네거티브 전략은 어렵게 됩니다. 연립정부 경험이 정당 간 적대심을 해소한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그게 되겠냐’고 하지만 제대로 바꿔보지도 않고 그런 말은 할 수 없는 거죠.”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공직역량연구실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행정연구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