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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오늘의 딸기

나는 밥 먹을 준비를 할 때만 집을 나선다. 상추며 깻잎이며 대파며 양파며 당근이며 오이며 하는 것들을 서리해 오기 위해서다.

마을을 설렁설렁 한 바퀴 돌면 어느새 양손이 가득하다. 씨를 뿌리지도, 물을 주지도, 잡초 한 번을 매지도 않은 수확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텃밭을 돌보고 있던 이웃이 나를 보고 말한다. “채소를 직접 가져다 먹는 거야? 기특해라.” 그렇다. 나는 이 마을의 유명한 서리꾼이다.

엄마는 환갑이 넘어 친구들과 함께 산골 마을로 단체 귀촌했다. 목장으로 쓰이던 허허벌판을 단체로 매입해 하나둘 집을 지어 지도에 없던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의 이름과 규칙을 짓고, 건강 교실을 만들고, 공동 텃밭도 가꾼다. 나는 이 마을에서 제일 게으르다. 내가 잠든 동안 마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동이 틀 즈음 다 같이 밭을 매고, 시기에 따라 꽃과 모종과 나무를 심고, 해가 질 때쯤 흙이 축축해지도록 물을 준다. 그 모든 궂은일에 나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일주일 정도 있을 것처럼 왔다가 일 년을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언제나 그 계절의 주인공들이 채워져 있다. 전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온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국을 끓이고 무치고 볶고 쪄서 상을 차린다. 오늘은 감자와 호박과 두부를 넣고 끓인 얼큰한 고추장찌개와 뜯어온 쌈 채소에 현미밥과 두부를 싸 먹었다. 쉼 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어딘가에 산다는 것은 그 땅에서 자라난 것들을 먹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배불리 먹고 참외 하나 깎아 먹으며 부른 배를 두드린다. 후식의 후식으로는 딸기를 먹는다.

요맘때는 부엌 식탁에 어김없이 딸기 한 그릇이 놓여 있다. 엄마가 출근하기 전에 마당에 있는 딸기를 따서 올려두는 것이다. 딸기를 따놓지 못할 정도로 바쁜 아침이면 엄마가 나가면서 소리쳤다. “딸기 따 먹어.” 하지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딸기가 어디 있다는 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있잖아!” 엄마는 팔을 쭉 뻗어 마당을 가리켰다. 거기엔 맹세하건대 아무것도 없었다. 평생 딸기를 먹기만 했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딸기는 땅바닥에 포복 자세로 숨어 있었다. 땅에 붙을 듯이 자세를 낮추면 그제야 작은 잎들 아래 숨은 하얀 딸기들이 보였다. 엄마는 거기 열리는 작은 딸기들을 매일같이 부지런히도 땄다. “오늘도 열렸네. 오늘도 열렸어.” 마당에 엎드린 채로 말했다. 내 몫으로 남겨진 한 줌의 딸기는 식탁 위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일어나서 차를 길게 마시고 밥을 거하게 차려 먹은 뒤 후식으로 딸기를 먹었다. 한 주먹 쥐어서 입에 털어 넣고 나면 딸기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어째서인지 우리 집 마당에는 노지 딸기가 열린다. 딸기라고 했지만, 우리가 평소에 마트에서 사 먹는 딸기와는 딴판이다. 덩치도 작고 모양도 가지각색이고 심지어 빨갛지도 않다. 노랗거나 하얗다고 해야 맞을 거다. 못생긴 엄지손가락처럼 생겨서는 어딘가 조금씩 허옇게 물러 있다. 마치 ‘되는 데까지 애써봤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딸기의 못생긴 사촌이나, 비공식 딸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트의 딸기들이 며칠이 지나도 빨갛게 싱싱하다면 이 딸기들은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 눈이 마주친 바로 그 순간이 그 딸기의 가장 맛있을 때다. 더 늦게도, 더 이르게도 안 되고 꼭 오늘이어야 하는 딸기가 우리 집 마당엔 있다. 그래서 맛이 없냐면 그렇지 않다. 은은한 단맛과 시큼한 향이 연하게 입안에서 뭉그러진다. 그 맛은 뭐랄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자연스럽다. 딸기의 오늘을 놓치지 않았음에 감사한 그런 맛이다. 나의 하루는 이 딸기를 닮았다.

오늘도 열렸을까? 나는 마당으로 나가 몸을 엎드려 보았다.

양다솔 작가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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