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한다고 밝히면서 한국을 포함한 상호관세 대상 국가들이 대미 협상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보복 조치를 발표한 중국에 대해 관세를 125%로 인상했고 중국의 대미 84% 보복관세도 발효돼 미·중 간 ‘치킨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중국에 대한 관세를 “즉시 1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 인상이 “세계 시장에 대한 중국의 존중 결여를 근거로 한 것”이라며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언젠가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갈취하는 시대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거나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75개국 이상이 미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보복하지 않았다면서 “90일 유예를 승인하고 이 기간 상호관세를 10%로 대폭 낮췄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한) 75개국 이상은 상무부, 재무부, 무역대표부(USTR) 등 미 정부와 무역, 무역장벽, 관세, 환율조작, 비금전적 장벽 등에 관한 해법을 협상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왔다”고도 밝혔다.
이번 조치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적자를 이유로 ‘최악의 침해국’으로 지목해 기본관세율인 10%보다 높은 상호관세가 부과된 57개국은 향후 90일간 10%가 적용된다. 25%의 상호관세가 부과된 한국도 90일간 10%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 철강·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한 25% 품목별 관세는 유지된다.
상호관세가 발효된 이날 0시1분 미국의 대중국 관세는 총 104%였으나 트럼프 대통령 발언 이후 125%로 치솟았다. 앞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존 20% 관세에 상호관세 84%를 더한 104%를 부과하자, 중국도 대미 보복관세를 34%에서 84%로 올린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보복과 재보복 조치를 주고받으며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상호관세 시행 13시간여 만에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에 대해 전격적인 유예 조치가 나온 데는 금융시장 불안, 특히 미 국채 가격 급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 국채 시장을 보고 있었다. 국채 시장은 매우 까다롭다”면서 “내가 어젯밤에 보니까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더라”고 말했다. 증시 폭락과 함께 안전자산인 국채 투매가 나오고 월가 인사들의 경기침체 우려 언급이 잇따르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유예로 급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중국 관세를 대폭 인상한 것은 중국의 맞대응 수위가 높다는 점과, 초당적 공감대가 있는 ‘중국 때리기’에 집중해 미국 내에서 커지는 관세 비판 여론을 돌파해보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추가 관세 가능성에 대해선 “우리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 친구이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상호관세 유예가 처음부터 전략이었으며, 각국과의 무역 협상에 나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식시장 폭락이 유예 결정의 배경이냐는 질문에 “아니다. 많은 요청이 있었고 75개국 이상이 우리를 접촉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베선트 장관은 “각 국가에 대한 해법을 맞춤형으로 하려면 시간이 약간 걸릴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90일 유예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을 언급하면서 한국, 일본, 대만이 관련 사업 자금을 대고 이를 통해 채굴한 LNG 구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하자 주식시장은 환호했다. 이날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전장 대비 9.52%, 나스닥 지수는 12.16% 급등하며 각각 2008년 10월, 2001년 1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10일 한국 증시도 안도 랠리를 펼쳐 코스피는 전장 대비 6.60%, 코스닥은 5.97% 상승 마감했다.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