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가운데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돼있다. 이준헌 기자
올해 초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당시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서부지법 내부에 들어갔다가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해 영화인들이 법원의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이들은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남기기 위한 예술가의 행위가 범죄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국영화프로듀서 조합 등 영화인 단체 8곳은 지난 9일 “억울하게 기소된 정 감독의 무죄를 요구한다”는 성명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앞서 정 감독은 지난 1월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그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린 당시 현장을 찾았다. 카메라를 들고 시위대를 따라가 이를 촬영한 정 감독에게 검찰은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해 사건의 다른 피고인 62명과 함께 기소했다. 정 감독은 피고인 중 유일하게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영화인들은 “정 감독은 그날 폭도를 찍은 자이지, 폭도가 아니”라며 “민주주의의 위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현장에서 기록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지와 예술가로서의 책무감에 법원으로 향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 감독처럼 법원에 진입해 촬영한 JTBC 취재진은 기소는커녕 지난 2월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것을 언급하며 “이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다.

·영화인들이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당시 현장을 기록했다가 특수건조물침입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의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영화인 탄원서를 받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SNS 갈무리.
정 감독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용산·세월호·이태원 참사 등을 기록해왔다. 영화인들은 정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한국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집단적 망각을 성찰해온 예술가”라며 “가장 고통스럽고 잊히기 쉬운 사회적 순간들을 담담히 기록해 온, ‘재난 이후’를 응시하는 작가”라고 했다.
정 감독은 불법 계엄시도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붕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4일 계엄 해제 당일부터 3개월간 국회의 협조를 받아 1·2차 탄핵안 국회 본회의 투표를 촬영하고, 이후 서울 여의도·광화문·한남동 탄핵 찬반 집회, 국가인권위원회를 촬영했다.
영화인들은 “수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작업의도는 명확히 소명되었다”며 “이번 기소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하고, 예술가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예술가를 처벌한다면 앞으로 누가 재난의 자리와 사회적 기록의 가치를 지닌 현장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어 “이번 판결이 예술의 자유와 공공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법원에 무죄 판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영화인을 대상으로 오는 14일 오후 6시까지 연명을 받는다.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 등 시민단체들도 같은날까지 탄원인을 별도로 모집 중이다. 정 감독에 대한 다음 공판은 오는 16일 서부지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