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수사하는 군 검사에 “영장 잘못됐다” 추궁
1·2심 “부적절한 행동이지만 법적 처벌은 못해”
대법원도 원심 유지…유족 측 “무책임한 판결”
함께 기소된 군무관·장교는 벌금형·실형 확정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어머니 박순정씨가 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고 이예람 중사 특검사건 상고심 선고를 마친 후 입장을 발표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수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를 받은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창길 기자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55)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전 전 실장의 행위가 매우 부적절하지만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유족은 “무책임한 판결”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0일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전 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 전 실장은 이 중사 사건의 수사정보를 자신에게 알려준 군무원 양모씨에 대해 군검찰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영장이 잘못됐다”고 추궁하며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이 중사는 2021년 3월 선임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신고했지만 2차 가해에 시달리다가 군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군검찰이 사건을 부실 수사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수사를 지휘·감독한 전 전 실장 등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의혹의 발단이었던 녹취록이 허위로 밝혀지면서 특검은 전 전 실장에게 면담강요죄만 적용해 기소했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군 수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2023년 6월2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심과 2심은 전 전 실장을 면담강요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면담강요죄는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필요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나 그 친족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만남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했을 때’ 적용한다.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이 피해자나 증인 등에게 만나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1심 재판부는 면담강요죄가 “증인이나 참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고, 검사 등 수사기관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은 1심이 법 적용 대상을 너무 좁게 해석했다면서도 전 전 실장이 무죄라는 결론은 유지했다. 재판부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형사처벌을 공백을 막기 위해 입법 목적보다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특검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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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측은 “죄는 있지만 처벌할 수 없다는 건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이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는 선고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예람이와 우리 가족을 위로해주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도했는데 너무나 실망스럽고 허무하다. 마음이 텅 빈 것 같다”며 울먹였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인권의 보루인 대법원이 사건의 법리만 따지고 피해자가 왜 군대 안에서 자살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며 “2차 가해를 방치한 군, 전익수와 같은 경우를 처벌할 법을 만들지 않은 국회, 피해를 외면하고 소극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한 대법원 모두 이 중사의 억울한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이 중사 사건의 수사 정보를 누설해 전 전 실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군무원 양씨는 이날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 수사 과정에서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이라며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를 받는 공보담당 장교도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