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현대제철 창으로 본 한국 철강산업 딜레마](https://img.khan.co.kr/news/2025/04/10/l_2025041101000325400034051.jpg)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대문자로 “IF YOU DON’T HAVE STEEL, YOU DON’T HAVE A COUNTRY(철강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라며 미국 철강산업 보호 의지를 피력했다. 또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뤄진 현대차그룹 미국 투자 발표에서도 그의 지극한 철강 사랑이 드러났다. 당초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 트럼프를 초청하려 했으나,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제철소’ 투자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발표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장소가 바뀌었다고 한다.
현대제철이 미국에 건설하는 제철소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일관제철소다. 일관제철소는 쇳물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연료비와 물류비가 절감된다. 일본제철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US스틸 같은 고로 제철소는 지난 60년간 보호무역에 크게 의존해왔지만, 뉴코어(NUCOR) 같은 전기로 회사들은 미국에서도 고수익을 누리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강판 수요, 주정부의 다양한 혜택 약속,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전기요금, 미래의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풍부한 그린수소,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으로 전기로 제철소 투자의 핫스폿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북미에서는 이렇게 원대한 비전을 발표했지만 국내에서는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딜레마에 허덕이고 있다. 첫 번째 딜레마는 중국산 등 수입 철강재의 공습과 경기침체로 인한 철강 수요 부진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위기에 빠트린 중국산 저가 공습은 철강산업의 뿌리마저 흔들고 있다. 35년 만의 최저를 보이고 있는 시멘트 수요에서 알 수 있듯 함께 닥친 건설경기 침체 역시 철강 수요를 수십년 이래 최악으로 위축시키고 있다.
중국산 공습·수요 침체로 부진
중국산 철강재 수출은 연 1억2000만t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철강 생산량(6300만t)의 두 배이며, 미국(8000만t)보다도 많다. 그동안 한·중·일 철강 수출의 주력 시장이었던 동남아도 생산능력이 2013년 5600만t에서 올해는 1억2000만t으로 늘어났다. 동남아 수출시장 축소로 국내 철강 수요의 30%를 중국과 일본산이 점령했다.
이러한 동남아 시장의 포화로 일본제철은 총 15기의 고로 중 5기를 폐쇄했다. 올 3월에는 연산 400만t 규모의 초대형 고로도 폐쇄했다. 일본의 JFE도 연산 400만t 고로를 5월부터 휴지시킬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포스코는 포항 1제강과 1선재 공장을 지난해 폐쇄했고, 광양 2고로에 대해서는 장래성을 고려해 전면 보수 계획을 부분 보수로 변경했다. 현대제철은 작년에 포항 2공장 폐쇄 방침을 정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축소 운영하고, 인천공장 철근 생산을 한시적으로 전면 중단했다. 다른 철강회사들도 조업을 단축하거나 야간 조업만 하고 있다.
현대제철에 투영된 한국 철강산업의 두 번째 딜레마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집중 인상이다. 2012년까지는 주택용을 비싸게 해서 산업용을 교차 보조해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역으로 산업용이 교차 보조를 대폭 해주고 있다. 2002년부터 2017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은 12회, 누계 80.6%를 인상했고 같은 기간 주택용 요금은 인상 6회, 인하 4회로 누계 4.2% 인하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산업용은 7회, kWh당 총 80.0원을 인상했고 주택용은 5회, 총 40.4원을 인상했다. 그 결과 kWh당 전기요금은 산업용 185원, 주택용 150원 수준이 됐다.
이러한 십수년에 걸친 산업용 전기요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최근 전기로 철강회사들은 모두 적자로 전환했다. 철강 제조에 필수 원료인 합금철 생산회사들은 이미 공장 문을 닫았거나 일부는 해외로 이전했고, 전기를 사용해 자동차·조선·방산의 주요 부품을 만드는 주물회사 역시 고사 직전이다. 전기요금은 인상 그 자체도 문제지만, 정부(정치)가 제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기업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제조업 투자 부진의 큰 요인 중 하나가 전기요금(전력산업)에 대한 정책 불확실성이다.
지속적인 노사 갈등 숙제 풀어야
기업은 중단기적으로는 전기요금 인상에 타격을 받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전기요금의 예측 가능성이 올라가면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반드시 세운다. 따라서 전기요금을 ‘관치요금’이 아닌 ‘시장가격’으로 정상화해달라는 것이다. 시장이 전기요금을 정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보호해야 할 산업은 정책적 지원을 해주고 에너지 빈곤층에게는 에너지 복지와 바우처 제도를 넓히는 방향이 절실하다.
세 번째 딜레마는 지속적인 노사 갈등이다. 포스코도 지난해 창사 이래 첫 파업 직전까지 가는 갈등을 겪었는데, 현대제철은 유독 더 심하다. 2022년에는 현대제철 정규직 노동조합이 사장실을 146일간 점거했고, 이후에는 하루 두 번 8시간씩 공정별로 예고 없는 게릴라 파업을 벌였다. 올해도 당진제철소 냉연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게릴라 파업이 한 달 이상 이어지자 회사는 결국 2월에 1953년 창사 이래 첫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냉연 강판은 자동차에 사용되는 철판이다. 냉연 생산 중단이 장기화하면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현대제철이 임단협 교섭에서 매년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엉뚱한 곳을 비교 대상으로 하는 것에 기인한다. 현대제철 정규직 노조는 같은 철강산업 내 경쟁 회사와의 비교가 아닌, 산업과 수익 구조가 전혀 다른 현대차를 기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는 유니크한 3만개의 부품을 구매·조립해서 7000만원가량의 상품으로 판매하는 업이다. 이런 자동차사에 100만원도 안 되는 범용 차강판 한 가지를 판매하면서 우리 덕분에 당신들이 돈 벌었으니 같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제철 매출액의 85%는 현대차와 무관하다.
트럼프의 철강 사랑과 미국 전기로 철강의 부흥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중국산 공습과 국내 수요 침체, 정부(정치)의 무개념 전기요금 인상, 정규직 노조의 생뚱맞은 요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