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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대선, 행복하십니까?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방송토론 말미에 갑자기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 뒤에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가 따라붙었다. 그러니까 그 질문에서 행복의 의미는 대략 중산층의 가처분소득 상승이나 사회 사각지대 해소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약속했던 경제 성장의 낙수효과는 없지 않았냐는 고발이기도 했다.

이 말은 큰 호응을 얻었다. 행복과 삶의 존엄성에 관한 질문 자체가 부재했던 주류 정치에 던진 문제 제기에 공감한 유권자들은 권 후보에게 96만표를 모아 주었고, 이는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진입에 발판이 됐다. 진보는 단지 좋은 가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복을 가져올 것이며, 그 핵심은 살림살이의 개선이라는 데 공감이 있었던 것이다.

2002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달러를 넘었고 세계 47위였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3만6000달러에 세계 20위권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이 비약적인 수치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수치도 참고해보자. 영국 신경제재단이 개발한 행복지구지수(HPI)는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웰빙이 행복이라고 보고, 사회경제 지표와 환경 지표를 통합한다. 2024년 HPI에 따르면 한국은 147개국 중 76위다. 기대수명은 6위, 웰빙은 56위로 높은 편이지만 탄소발자국이 130위에 그친 게 크게 작용했다. 당장 소비와 쾌락 수준은 높지만 미래의 불행에는 손을 놓고 있는 불안한 행복이라는 뜻일 터다. 참고로 HPI 1위는 바누아투, 2위는 스웨덴이다.

6가지 변수를 종합해 행복을 측정하는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의 세계행복지수(WHR)에서도 한국은 58위에 머무른다. 특히 사회적 지지(84위), 자유(104위)에서 순위가 낮고 시민의 긍정적 감정, 자비심, 불평등 정도 모두 최근 몇년 새 악화하고 있다.

어떤 행복 지표로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지표상 살림살이는 나아졌는데 행복은 나아지지 않았다. 염려를 할 만한 일인데도 이를 심각히 여기는 언론이나 정치인도 드물다.

한국에서 GDP의 절대적 지위는 여전하다. 진보 진영조차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잘못 중 하나가 GDP 성장 실패라고 지목하고, 민주당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선 예비 후보들도 GDP 성장 회복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중위권 행복 국가의 현실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경제성장률이라는 추상적 지표 앞에서 행복의 방향과 다양성은 무시된다.

행복을 곧 살림살이로 연결했던 권 후보의 말도 이제는 협소하거나 낡은 메시지일 것이다. 권 후보의 선전 이후 2004년 총선을 맞은 민주노동당이 TV 광고에 담은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는 지금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한대수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봄과 새들의 소리, 산들바람과 태양과 비를 떠올리며 자신이 꿈꾸는 행복의 나라를 노래했다. 기후위기로 행복의 지반이 위협받고 불평등으로 행복의 감각이 무너지고 있는 때에 우리는 다시 조기 대선을 맞이했다. 현실 정치라는 막막한 장벽 앞에서도, 그래도 또 한 번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장막을 걷고 행복을 물어야 할 것이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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