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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11시22분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11시22분

2000년 6월13일 오전 11시. 공항 활주로에서 기자가 소식을 전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평양입니다.” 이윽고 비행기 문이 열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김 대통령은 곧바로 발을 떼지 않았다. 트랩에 선 채 한동안 북녘의 하늘 한구석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밀한 고독을 깬 뒤 천천히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고 포옹했다.

2007년 9월의 어느 날. 선친이 이승을 떠났다. 향년 81세. 유품을 정리하다가 작은 버릇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많은 사진 속의 아버지는 카메라가 아니라 11시 방향의 공중을 늘 바라보고 있었다. 마흔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사고의 후유증을 저런 각도로 감당한 것일까. 지상이 아니라 하늘 한구석에 마음의 거처를 미리 마련해놓은 것일까. 부친의 포즈를 그렇게 뒤늦게 이해했다.

2009년 8월18일.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 날, 황지우 시인이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발표했다. 특히 이 구절에 마음을 포갰다. “순안공항에 내렸을 때 트랩 위에 잠시 서서 동원된 환호성 대신 멀리 북녘 산하를 망연히 바라보시던 당신 모습을 정말 잊을 수 없어요.”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 하나회를 척결한 이래 문민정부는 군에 제 본연의 임무만을 확실히 주었다. 고려시대의 무신정권이 언제 적 역사인가. 어떻게 물리친 유신시대인가. 그런데 다시 군을 불러들이다니, 검찰 출신의 참 같잖은 대통령.

2025년 봄날. 헌법재판소의 대심판정으로 세상의 이목이 쏠렸다. 재판관들이 착석하고 모두 숨을 죽인 가운데,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동안 허공을 응시했다. 이윽고 침묵을 깨고 선고 요지를 낭독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경이와 경의의 문장에 도달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오전 11시22분. 매일 찾아오는 이 시각은 대한국민 모두에게 이제 따끔한 신호가 되었다. 앞으로 그 누구든 허튼수작 부리려다간 이 송곳 같은 시간에 찔려 함부로 딴맘 먹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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