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위헌적인 계엄이 기습적으로 선포된 후 122일 만에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파면 결정의 준거는 헌법이다. 하지만 단순히 헌법재판관 8인의 헌법 해석에만 근거한 것은 아니다. 122일 동안 시민이 광장에 함께 모여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를 성찰한 덕분이다. 한 사회는 심층적 차원에서 사회적 삶에 궁극적인 방향을 제공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통합돼 있다. 이러한 가치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먹고사느라 바쁜 일상의 삶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를 근본적인 위기에 빠뜨리는 문제적 상황이 발생하면 다르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가치론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녕 무엇인가.”
윤석열의 위헌적 계엄 선포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인 위기로 몰아넣었다. 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시민의 동기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광장으로 시민을 이끈 동원 기제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참여 동기와 동원 기제는 다양해도, 그 엄청나게 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줄기차게 몰려나왔다는 그 놀라운 사실! 그들 모두가 공동으로 준거하는 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공동의 준거는 무엇일까? 그건 ‘대통령’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은 ‘국민적 연대’를 핵심 원리로 하는 시민 영역을 대표한다. 한국 국민을 묶어주는 보편적 연대는 헌법 제1장 총강 제1조에 명확히 기술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보편적 연대 원리는 사실 너무나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일상의 삶에서 직접 보거나 체험하기 어렵다. 그 추상성을 구상화한 것이 구체적인 인물로서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헌법의 아이콘이다! 대통령은 어느 특정 정파의 수장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헌법의 성스러운 가치에 따라 보편적 연대를 실행하는 존재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경제·정치·교육·종교·가족·공동체 등 사회의 여러 하위 영역에 개입한다. 각 영역이 자체만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정파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보편적 연대를 위해 통합적으로 작동하도록 조절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대통령의 이런 개입과 조절을 정당한 통치행위로 인정한다. 대통령을 ‘인물’이 아니라 ‘공직’, 즉 모든 하위 영역이 보편적 연대를 위해 작동하도록 조절하는 ‘제도’로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이러한 공직을 맡은 구체적 개인이다. ‘구체적 개인 윤석열’은 사적 차원에서 행위의 동기와 대인관계 유형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자신의 동기와 대인관계를 모두 국민적 연대를 위해 구성할 것으로 기대받는다. 이를 통해 제도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것으로 여겨진다. 윤석열은 이러한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사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소수의 비밀스러운 대인관계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도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비친다. 광장에 나온 시민은 대통령이라는 공직을 보편적 연대의 제도로 되돌리고자 했다.
이러한 열망을 이어받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헌법재판소라는 민주주의 제도가 없었다면 아예 불가능했을 일이다. 만약 파면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과 고통이 뒤따랐을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누군가 섣불리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말하며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헌법 덕분에 보편적 연대를 배반한 대통령을 합법적으로 파면할 수 있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바야흐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누가 보편적인 국민적 연대를 실행하는 공직에 적합한 삶을 살아왔는지 꼼꼼히 살피고 투표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