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두렁·밭두렁 태우기. 산림청 제공
고령화에 배출장 부족…쓰레기 소각 ‘부채질’
“집 앞에서 태우고. 아침 저녁으로 논밭에서들 태우죠. 자식이 같이 사는 집은 수거장으로 갖고 오기도 하는데, 혼자 살면 그냥 태우는 거지. 방법이 없잖아.”
전북 남원시에 위치한 한 마을 이장 박환주씨(가명·63)는 마을을 돌아보다 종종 쓰레기 소각 현장을 본다. 마을에 쓰레기 분리 배출장이 있지만 주민들이 집 근처에서 직접 태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큰 산불을 겪은 경남 산청군 마을도 주민들이 평소 쓰레기를 태운다고 했다. 지난 7일 산청 소재 마을 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는 “지금 이렇게 불이 크게 났으니까 요즘은 태우기가 겁이 난다”며 “(쓰레기는)집에 쟁여놓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지역의 쓰레기 소각은 산불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산림청 2015∼2024년 산불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발생 산불 546건 중 입산자 실화가 171건(37%), 쓰레기 소각 68건(15%), 영농 부산물 소각 60건(13%) 순이었다.
농촌 주민들이 산불 위험을 알면서도 쓰레기를 태우는 것은 관행처럼 해온 측면도 있지만 내다 버리기 어려운 환경 탓도 있다.

남원시의 한 면소재지에 설치한 쓰레기 배출장.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 폐쇄된 상태다. 싱글벙글 비니루없는점빵 제공
당장 쓰레기를 내다 버릴 장소가 부족하다. 남원 지역 환경단체 싱글벙글 비니루없는점빵 에서 공개한 ‘남원시 읍·면 쓰레기 배출장 현황’ 자료를 보면 전체 남원 읍면 마을 367곳 가운데 생활 쓰레기 배출장이 있는 곳은 78곳(21.2%)에 불과하다. 영농 폐기물 배출장은 더 적다. 전체 마을 중 50곳(13.6%)에만 영농 폐기물 배출장이 있다. 남원시의 전체 인구는 약 7만6000여명으로 읍·면에는 전체 시 인구의 40%인 약 3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배출장 있어도 관리 부실 태반…폐쇄 수두룩
배출장이 없는 마을은 배출장이 설치된 다른 마을로 나가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배출장이 설치된 마을은 이웃 마을에서 쓰레기를 떠넘긴다고 여겨 서로 얼굴 붉히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운전 면허가 없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쓰레기를 챙겨 다른 마을로 가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에 결국 직접 태우기를 택한다. 이재향 싱글벙글 비니루없는점빵 대표 활동가는 “연세가 많은 분들은 갖고 나오기가 쉽지 않고, 분리 배출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 면소재지 내 쓰레기 배출장. 자체적으로 소각장을 설치했다. 싱글벙글 비니루없는점빵 제공
도심과 차별화된 ‘농촌 쓰레기’ 정책 필요
배출장이 있는 마을도 관리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배출장 내 분리 수거를 관리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배출장은 온갖 쓰레기들로 금세 엉망진창이 된다. 이 때문에 쓰레기 배출장을 특정 시간에 한해 개방하거나 아예 폐쇄해버리는 마을이 부지기수다.
강원도 홍천에서 마을 순환 텃밭 ‘모아’(재활용 쓰레기 배출장)를 운영하는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는 “쓰레기 배출장이 있더라도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활용이 어렵다”며 “농촌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간과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촌 쓰레기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은 소극적이다. 영농 부산물을 태우지 말고 갈아 없애라는 취지로 농촌진흥청·산림청·지자체가 영농부산물 파쇄기 무상 대여·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보급이 더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3월 7일 강원 홍천 물걸2리 쓰레기 배출장 관리자 ‘모아짱’ 최종화씨가 배출장에서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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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는 농촌 쓰레기와 지역 일자리를 연계한 정책 실험에 나서고 있다. 강원 홍천과 전북 남원 지역 마을에서는 숲과나눔과 사랑의열매가 공동 진행하는 ‘초록열매 성과확산 프로젝트’ 지원금으로 마을 쓰레기 배출장을 관리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적은 급여의 일자리였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홍천의 경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달부터 정부 노인일자리를 배정받기도 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소각 행위에 대한 단속과 행정지도를 강화하는 한편 농촌 인구구조 등 지역 특성을 감안한 농촌만의 폐기물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