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린용기(가명·29)가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해 12월16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무대에 오른 ‘빌린용기(용기)’(가명·29)의 손은 떨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립·은둔 청년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며 건넨 인사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용기는 “소외된 이들은 뉴스거리가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하는 동료 시민”이라며 “왜 그들이 넘어진 채로 있는지 돌아봐 달라”고 외쳤다. 발언을 마치고 내려오자 한 시민이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손을 잡았다. 용기는 그때 생각했다. ‘나도 말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내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나도.’
2016년부터 주로 집에만 머물며 스스로 고립됐던 용기는 이번 탄핵 때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지난 4개월간 90여곳이 넘는 광장을 찾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 트랙터 시위, 세종호텔 복직 요구 농성장,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등 ‘차별을 받고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의 수만큼 지켜야 할 광장은 끝도 없이 넓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용기는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이 “‘나중에’라는 말로 밀려나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에서 용기가 본 광장은 ‘밀려난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지역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약자와 소수자들이 무대에 오르고 마이크를 들었다. 용기는 그들로부터 ‘용기를 빌려’ 광장에 나오고 무대에 섰다고 했다.
이번엔 방 안에만 있은 채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았던 자신이 이 ‘밀려난 사람들’을 호명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아 ‘OO대학교 학생’이라고 소개할 수 없는 청년들, 환경을 지키고 싶어 씻은 우유갑에 양초를 넣어 온 사람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 등. 용기는 “나란 사람이 사회에서 늘 보이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말하고 싶었다”며 “인권은 보편적이고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 전에도 늘 ‘덜 중요한 사람’과 ‘더 중요한 사람’ 간의 위계는 공고했다”고 말했다.
용기는 탄핵 이후 사회는 이 밀려나고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부대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광장에서 발언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긴 쉽지만 실제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란 힘든 일”이라며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라는 말로 선이 그어진다”고 했다.
용기가 했던 무대 위 발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회자됐지만 정작 그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의 문제의식이 그만큼 부각되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그는 “배달 노동자, 이주 노동자, 성 노동자의 발언도 터져 나왔지만 역시 ‘나중에’라는 말로 밀리고 있다”며 “‘나중에’에 밀려 누군가 더 죽어가기 전에 같이 살아가고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2월9일 윤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용기(닉네임·29)의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빌린 용기 제공
용기는 요즘 세미나나 학습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광장의 경험을 ‘지식’으로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엔 서울 성북구청 앞으로 가서 집창촌 재개발로 살 곳을 잃을 위기에 놓인 미아리 성매매 여성들에게 연대한다. 고립·은둔 청년이었던 그는 이제 작은 광장들이 고립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용기는 “탄핵 이후의 사회에선 사람들이 서로 조금만 덜 물어뜯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벌어질 수 없을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다. “고통스러워도 소통은 필요하니까요. 고립, 은둔 청년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지만 그렇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