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 심리에 본격 착수했다. 앞서 지난 8일 한 대행은 퇴임 예정인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대통령 고유 권한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권을 권한대행이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재에 소송을 냈다.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헌법 위반 소지가 매우 크다. 지금껏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학계의 정설도 권한대행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실질적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이 위헌·위법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번 권한 행사가 위헌이라는 것은 사실 한 대행이 누구보다 잘 안다. 한 대행은 지난해 12월26일 “권한대행은 헌법 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정신”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권한대행 신분이라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 3명(마은혁·정계선·조한창)도 임명할 수 없다던 한 대행이 갑자기 변한 것은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주지하듯 이 처장은 윤석열의 40년 지기이고, 12·3 내란 사건의 피의자다. 이 처장은 비상계엄 다음날인 지난해 12월4일 삼청동 안가에서 이상민(당시 행정안전부 장관)·박성재(법무부 장관)·김주현(대통령실 민정수석) 등과 4자 회동을 하고, 이후 휴대전화를 폐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한 대행은 이 처장 등에 대한 최소한의 인사검증도 하지 않았다. 이 처장이 재판관 지명 연락을 받은 날과 인사검증동의서를 제출한 날이 모두 지명 발표 하루 전인 지난 7일이었다.
대선 50여 일을 앞두고 윤석열의 심복을 신성한 헌재에 알박기하려는 한 대행에 많은 시민이 분노하고 있다. 헌재는 오는 18일까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을 포함한 9인 체제로, 이후엔 7인 체제로 운영된다. 재판관 7명 이상이면 사건 심리와 선고가 가능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은 재판관 5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이완규·함상훈 후보자 지명 효력은 본안 판단까지 정지된다. 지난해 10월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6인 체제로 심리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도 3일 만에 받아들여졌다.
민주주의 보루인 헌재에 내란 수괴 대통령을 방조한 내란 세력의 입성은 있을 수 없다. 헌재는 신속·엄정한 심리로 한 대행의 위헌적 행위를 막아야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도 이 처장을 비롯한 삼청동 안가 회동 4인방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마은혁(왼쪽 네 번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재판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한창 재판관, 정형식 재판관, 김형두 재판관, 마은혁 재판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권한대행, 이미선 재판관, 정정미 재판관, 김복형 재판관, 정계선 재판관. 김창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