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돌아갔다. 경호 문제를 핑계로 미적대다가 파면 선고 일주일 만에 짐을 싼 것이다. 그는 변호인단을 통해 발표한 입장에서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나라와 국민 위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관저를 떠나는 날까지 지지층만 챙겼고, 갈등과 분열의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끝내 사과·반성 없이 ‘막후 정치’를 지속하겠다는 윤석열의 몰염치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윤석열의 이날 메시지엔 국민 통합도, 헌재 결정 승복도 없었다. 그러면서 “지난 겨울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줬다”며 그 뜨거운 열의를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파면된 대통령이 관저를 퇴각하는 날까지 지지층 편애만 드러낸 데할 말을 잃게 된다. 아무리 응원해준 지지층이 고맙다 해도 내란으로 고통 받은 국민들에 대한 반성·사죄를 앞설 수는 없다. 윤석열은 눈물 흘리며 배웅한 젊은이들을 포옹하고, 이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는 퍼포먼스도 했다. 파면 후 관저에서 쫓겨나는 내란 수괴가 개선장군처럼 행세한 꼴이다.
윤석열의 퇴거는 파면 후 7일째에야 이뤄졌다. 생각 밖의 늑장 퇴거엔 내란죄 형사 재판 피의자의 증거 인멸 의혹과 국고를 축낸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매일 관저로 사람들을 불러 만나고 만찬도 했다니, 그 공사 구분 없는 후안무치에 혀를 차게 된다. 관저에서 흘러나온 말들도 하나 같이 가관이다. 당 지도부인 권영세 비대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대선 승리’를 주문했고,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나경원 의원·이철우 경북지사 등 대선주자들은 윤석열 통화·독대 후 ‘윤심’을 팔았다. 극우집회를 주도한 전한길씨에겐 “탄핵 반대를 외쳤던 분들께 너무 미안하다”며 강성 지지층을 달래기도 했다. 헌정 유린으로 파면되고도 여전히 관저에서 대통령놀이를 즐기다니 기가 찰 뿐이다.
윤석열은 관저를 나서며 나라와 국민 위해 새 길을 찾겠다고 했다. 당장 14일부터 내란죄 형사 재판을 받고 또 다른 공천 개입·체포 방해 등 수사로 언제 구속수감될지 모르는 이가 찾겠다는 새 길은 무엇인가. 그는 이제 헌정 질서를 흔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성실히 수사·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늦게나마 국민 통합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일이다. 윤석열은 막후 정치라는 헛된 꿈을 접어야 한다. 그 자락을 깔아주려는 친윤계도 민심의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에 ‘윤심’(尹心)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설 자리는 이제 어느 곳에도 없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 결정 일주일 만인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 앞서 정문 앞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권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