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자원의 착한 변신

강원도 영월의 작은 카페 ‘위로약방’은 쑥쉘과 쑥약과로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위로약방 제공
농사일 힘든 할머니들이 딴 영월 쑥
카페 ‘위로약방’ 인기 디저트 메뉴로
해남 쌀 비건 아이스크림 ‘나이스케키’
못난이 나주 배로 만든 ‘티즌’ 티백 등
2030 여성 대표가 만든 제품들 인기
강원 영월 마차마을은 쇠락한 탄광촌이다. 여느 농어촌 마을처럼 인구가 급감해 노년층만 남아 있는 이곳에 몇년 전 작은 카페 ‘위로약방’이 생겼다. 동네 명물이자 영월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된 이곳의 ‘비기’는 영월 쑥으로 만든 쑥쉘과 쑥약과다.
쌀가루와 쑥을 섞어 만든 빵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은 쑥쉘은 잘라서 한입 베어 물면 은은한 단맛에 진한 쑥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흰색과 쑥색의 대비도 좋아 ‘인스타그래머블’한 디저트로도 손색이 없다.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디저트가 쑥쉘이라면, 전국구로 팔리는 디저트는 쑥약과다. 귀리가루에 쑥을 넣어 반죽한 쑥약과는 당 함량(제품 100g 기준 5g)이 다른 약과에 비해 낮다. 또 일반적으로 튀겨서 만드는 방식과 달리 반죽을 빚어 구워 만들면서 건강 약과라고 입소문이 났다.

저당 초콜릿 ‘팥콜릿’.
지난 3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팝업을 열고 성황리에 제품을 매진시켰다. 현대백화점과는 이미 여러 차례 팝업을 내면서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상반기 중에는 온라인 쇼핑몰 오아시스와 컬리를 통해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매장에서는 비정기적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쑥약과 만들기 체험도 열린다. 한은경 대표(38)는 “30대 여성들이 특히 많이 찾아오신다”면서 “저당 디저트로 건강 간식이라, 혹은 부모님에게 선물하기도 좋아 찾는다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원래 서울에서 팥으로 저당 초콜릿, 차 등을 만드는 사업을 하다 2021년 연고가 없는 영월로 왔다. 역대 조선의 왕 중 유일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비운의 왕 단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치러지는 영월 단종문화제에 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서다.
당시 개인적으로 마음이 힘들었던 상황이라 ‘위로’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박혔다. 자신도 위로받고 다른 사람들도 위로하자는 차원에서 상호도 ‘위로약방’이라고 지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외지에서 온 젊은 사람에게 선뜻 마음을 열지 않던 할머니들과 끊임없는 소통만이 방법이었다.

쑥을 이용해 만든 디저트가 인기를 끌면서 영월 할머니들의 일자리까지 생겼다.
“70~90대인 할머니들 대부분이 농사일을 너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대신 들에서 쑥 뜯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게 하시는 걸 보고 쑥으로 디저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밭이 없어도 쑥은 지천에 나 있으니까요. 게다가 영월 쑥은 조선시대에도 임금님 진상품이었다고 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거든요.”
처음엔 할머니들이 쑥을 뜯어오면 그것을 구입해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정도였으나 할머니들의 일자리까지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약과를 떠올렸다.

영월 쑥으로 만든 쑥약과.
당을 낮추고 쑥을 넣어 당뇨 걱정이 많은 어른들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한 제품은 온라인 펀딩을 통해 완판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백화점에서 팝업 요청까지 왔다. 쑥 초콜릿, 쑥 사탕, 영월 콩 약과 등으로 제품 구색도 확장되고 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다 보니 늘 물량은 달리게 마련인데 앞으로는 제품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올 초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농촌혁신아이디어 모델 확산’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자금 지원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농촌 자원을 활용한 창의적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확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나주 배와 허브를 브렌딩해 만든 티즌의 ‘포레스트 민트티’. 티즌 제공
올해 선정된 9개 업체 중 위로약방을 비롯해 서스테이블, 티즌 등 모두 3곳은 ‘디저트’와 ‘2030 여성 대표’라는 공통의 키워드로 눈길을 끈다.

할머니들이 뜯어온 쑥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전남 해남에서 생산되는 쌀로 비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서스테이블은 2023년 ‘나이스케키’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내놨다. 비건 인구의 확산과 함께 꽤 유명해졌다. 식감과 맛이 일반 아이스크림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해남 쌀로 만드는 나이스케키에는 일반적인 아이스크림에 들어가게 마련인 우유와 달걀 등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쫀득하고 묵직한 식감을 낸다. 솔티드카라멜, 초콜릿, 그린티, 딸기, 멜론 등 5가지 맛 제품이 출시되어 있다.
유지방이 없는데도 쫀득한 맛을 내는 비결은 쌀이 가진 점성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비건 아이스크림이 나오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우유를 잘 먹지 못해 아이스크림과도 친해지지 못했던 백장선 대표(28)의 필요가 한몫했다.

해남 쌀의 쫀득한 점성을 이용한 비건 아이스크림 ‘나이스케키’. 서스테이블 제공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해 식품 산업이나 유통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그동안 먹어본 비건 아이스크림의 맛이나 식감에서 늘 아쉬움을 느꼈다.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뛰어들어 보니 아토피나 알레르기 때문에 일반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 사람도 많은 것을 보고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유지방 대신 쌀을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로 현장 조사에 나선 그는 해남이 군 단위로 연간 쌀 생산량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처음엔 가능성만으로 시작했는데 1년 넘는 시행착오를 거쳤다”면서 “해남 농업기술센터와 연구소, 전남도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처음 출시된 솔티드카라멜은 각종 식품 박람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유통사에서는 솔티드카라멜 외에 추가로 개발될 맛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다. 현재는 스마트스토어와 쿠팡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편의점 세븐일레븐에도 납품된다. 올해부터는 수출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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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맛과 패키징으로 2030 여성 팬이 늘고 있는 티즌의 ‘나주배 블렌딩 티’는 나주의 배를 활용한 제품이다. 나주배에 홍차와 히비스커스, 페퍼민트를 각각 블렌딩한 것으로, 깊고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는 호평이 많다.
이 제품은 나주의 주요 관광지와 연계한 패키징, 스토리텔링을 더해 현지 관광상품으로도 파고들었다. 맛은 좋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배가 생산량의 27%나 된다는 현실이 나주배 블렌딩 티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5년 전 창업하며 나주에 정착한 임재희 대표는 “나주시청과 협력해 나주배 콤부차도 개발하게 됐다”면서 “배뿐 아니라 버려지는 다른 과일들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