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 이어
윤석열 ‘퇴거 행사’도 내란 그림자
시민들, 계엄 겪으며 정치적 각성
대선에서 ‘비주류의 연대’ 주목을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혁명 이후 반혁명의 악몽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역사책에서 배웠지만, 여진이라기엔 충격이 너무 큰 사건들이 연발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의 역할은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 깨고 대통령 몫으로 남겨진 헌법재판관 두 명을 지명했다. 이제 50여일 후면 새 대통령이 들어설 텐데, 월권을 넘어 위법이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게다가 지명된 두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내란에 동조했으리라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과 야박하기 그지없는 판결로 법조인의 품격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한 판사 출신이다. 탄핵 인용으로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는 ‘헌재 흔들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파면된 전 대통령 윤석열의 행태 역시 이해 불가한 수준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한남동 관저를 떠나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철저한 각본에 따른 ‘행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5차선 도로를 전면 차단하고 손을 흔들며 마이크까지 찾는 영상은 그의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케 했다. 영상을 보던 시민들은 ‘정신승리’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21대 대통령 선거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이 선거의 화두는 단연 ‘정권 교체’일 것이다. 검찰 권력을 무기로 삼은 2년 반의 통치와 결국 군대까지 동원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초래한 국가적 폐해를 해소하고 국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진 정부를 선택하는 시간이다. 이제는 여당의 지위를 잃은 국민의힘은 정권 유지를 통해 과오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겠지만, 그들의 호소가 강성 지지자 집단 밖으로 얼마나 전파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월 2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탄핵안 인용 판결이 잘된 일이라는 평가는 69%로, 국민 10명 중 7명이 탄핵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구·경북에서조차 잘된 일이라는 평가가 50%(잘못된 일 36%)를 차지했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민주당 41%, 국민의힘 30%로 격차가 크고 이재명 전 대표의 지지율은 37%까지 올랐다. 계속되는 내란이 가져온 결과다.
앞으로 50여일 동안 권력 쟁취를 위한 정치인들의 욕망은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질주하는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들은 경제 회복·활성화(48%), 국민 통합·갈등 해소(13%), 민생 문제 해결·생활 안정(9%), 계엄 세력 척결(8%), 외교·국제관계(7%), 검찰 개혁(6%), 국가 안정화(6%), 정치 개혁·여야 협치(5%), 저출생 대책(5%)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동안 망가진 경제를 살리고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며 계엄의 진상규명과 가담자 처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과제들을 자신의 정치적 임무로 삼고 실행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이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이전의 선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국민의 의사 표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집단이 훨씬 더 확장됐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으로, 한강진과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광장에서 그동안 ‘비주류’로 배제됐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 청년, 농민, 장애인, 성소수자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나온 수많은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지닌 정치적 주체(Speaking Subjects)로서 각성하는 시공간이 열렸다.
그들은 “투쟁”이라는 말로 인사를 나누며,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모임을 열고,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집회에 참여한다. 응원봉 연대. ‘다시 만난 세계’ ‘그대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젠더와 세대, 장애와 계층과 지역을 아우르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연대가 시작됐다. 그들은 햇빛이 비치는 낮의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고 달빛이 내리는 밤의 광장에서 응원봉으로 어둠을 밝혀 왔다.
윤석열의 내란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지배 권력 카르텔의 실체를 명징하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것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21대 대선은 비주류의 연대를 튼튼히 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요구를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실현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