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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무
시골집 텃밭에 쭈그려 앉아 무를 뽑았다
희고 투실투실한 무였다
너희들 나눠 주고도 이걸 다 어떻게 하냐
시장에 나가서라도 팔아 볼거나
어머니는 뜻하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
머릿속을 텅 비게 해 주는 무였다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마음은 쉬었다

뽑아낸 자리마다 근심을 묻었다
이 무를 숭숭 썰어 넣고 국을 끓이면 얼마나 시원하려나
내 근심 묻은 자리마다 무가 다시 자라날 것을
어머니도 알고 나도 알았다
애초에 어머니도 무였고 나도 무였으니
그러니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상욱(1967~2023)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을 읽는다. 시인은 ‘달나라 청소’라는 상호가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계단 닦는 일을 했다. 그는 청소용품을 차에 싣고 어디든 달려갔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계단을 닦다가 자신을 비춰보기도 했을 것이다. 시인은 어느 날인가 시골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텃밭에 쭈그려 앉아 무를 뽑았다”. “희고 투실투실한 무” “머릿속을 텅 비게 해 주는 무”, 시원하게 속을 풀어 줄 무를 뽑았다.

수확이 많던 날, 어머니는 “시장에 나가서라도 팔아 볼거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는 생전 부려보지 못한 큰 욕심, “뜻하지 않은 욕심”이었다. 시인은 어머니와 함께 무를 “뽑아낸 자리마다 근심”을 파묻었다. 근심을 “묻은 자리마다” 햇무가 쑥쑥 자랄 것이라 믿으면서. 시끄러운 마음을 계속 파묻다가 “애초에 어머니도 무였고 나도 무였”기에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는 몸을 다독이다가 채워줄 달큼한 “무”이자, 텅 빈 “무(無)”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시는 끝없이 생성하는 숨결이 되어 우리 곁에 살아남을 것이다. 햇살이 그림자를 놓고 다녀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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