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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영화 ‘기생충’의 그곳, 14㎡가 만들어낸 재개발의 ‘기적’

1가구에 공동등기 관행…740가구 ‘조례’찾아 구제

최소평형 만들어 분양가 낮춰…581명 안 쫓겨나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1구역 다가구 주택 골목으로 13일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류인하 기자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1구역 다가구 주택 골목으로 13일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류인하 기자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햇볕조차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살아간다. 창문 밖 풍경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만 보이는 세상이다. 영화에서 이들이 사는 곳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지만 장남 기우(최우식)가 친구와 소주를 마시고, 딸 기정(박소담)이 복숭아를 훔치는 곳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1구역에 자리잡은 ‘돼지슈퍼’다.

돼지슈퍼가 위치한 아현1구역은 1980년대 판자촌 밀집지역이었다. 정부는 무질서한 판자촌 일대를 정비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판잣집을 허물고 빌라를 짓도록 했다. 일명 ‘자력갱생 재개발’이다.

자력갱생 재개발은 문제가 많았다. 이 지역은 95%이상이 2종 7층 이하 주거지로 분류돼 있어 지하실을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이 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건축법도 없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함께 빌라를 지은 사람들은 분양해서는 안 되는 지하실까지 분양했다. 부족한 건축비를 메우기 위한 방법이었다. 6가구 규모 3층 빌라에 지하실만 5개를 만든 곳도 있었다.

등기부등본에 올리지도 못하는 지하실을 분양했으니 당시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지하실의 지분을 지상층 각 가구 등기부등본에 n분의 1씩 나눠 올리는 것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13일 “아현1구역만의 특징이다보니 다들 ‘그러려니’하고 살았다”며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현1구역이 공공재개발 후보지가 되면서부터 드러났다. 각 가구당 1명의 조합원을 내세워야 하는데 이곳 빌라의 상당수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1가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현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공유지분을 갖고 있는 주민들 대부분은 재개발을 노린 게 아니라 90년대부터 평생 그렇게 사신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단독 등기를 갖고 있지 않았던 주민들은 조합원 자격을 얻지 못하고 현금청산 대상자가 될 위기에 놓였다. 현금청산이란 분양대상 자격이 없거나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주택가격을 돈으로 환산한 금액을 받고 소유권을 넘기는 것을 말한다. 통상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액으로 보상액을 정한다.

아현1구역에는 2692가구가 있다. 이중 902가구가 공유지분자다.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협동주택 및 다가구 162가구를 제외한 740가구는 조합원 분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현금청산을 받을 경우 이들은 살던 곳을 떠나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열악한 곳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마포구는 서울에서 아파트 평균가격이 높은 지역 중 한 곳이다.

재개발은 해야하는데…“내몰림 최소화 고민”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지역주민들에게 “이곳의 공유문제가 심각한 것은 안다”며 “합법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가져오면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공유지분자가 현금청산을 당하지 않고 1명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얘기다.

주민들은 가능한 모든 조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찾아냈다. 해당 조례(제36조 1항3호 등)에는 공유자도 권리가액(정비사업을 통해 분양받는 주택의 가치를 반영한 가격)이 최소평형 조합원 분양가보다 높으면 분양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마포구 신축아파트의 분양가 문턱은 높았다. 아무리 작은 평형을 분양하더라도 공유지분자의 권리가액보다 낮은 분양가를 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추진위는 주택법상 1가구로 볼 수 있는 최소면적인 전용 14㎡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산정했다. 분양가는 중구 중립동의 한 재개발조합을 기준으로 했다. 14㎡ 기준 분양가가 1억9132만원으로 책정됐다. 공유지분자의 권리가액보다 낮은 금액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 됐던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1구역 돼지슈퍼 옆 골목으로 13일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류인하 기자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 됐던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1구역 돼지슈퍼 옆 골목으로 13일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류인하 기자

이것이 아현1구역 공공재개발 조합원 물량 중 전용 14㎡ 단 1가구가 포함된 배경이다. 그 결과 현금청산 대상자 740명 중 78%에 달하는 581명이 쫓겨나지 않고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추진위 관계자는 “아직도 ‘왜 그런 사람(지하방 공유지분자)들까지 안고 가야하느냐’고 항의하는 주민들도 있다”면서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재개발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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