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대구시 산격청사에서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시장직을 내려놓은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두고 뒷말이 나돈다. 매듭짓지 못한 굵직한 지역 현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물론, 인사 잡음에 공정성 시비 등이 제기되면서다.
14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번 주 내로 대구시 소속 김모씨(37)에 대한 채용 비리가 의심된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할 예정이다. 김씨는 지난 1월 시 대변인실 뉴미디어팀장에 임용됐다. 대구경실련은 그가 ‘부정채용’ 됐다고 주장한다.
과거 김씨는 대구지역 한 일간지에서 유튜브 등 콘텐츠 제작 업무를 주로 도맡았다. 이후 홍 전 시장에 눈에 들며 2022년 6월 시장직 인수위원을 지냈고, 홍 전 시장이 임기를 시작한 그해 7월부터는 대구시(지방별정직공무원)로 자리를 옮겼다. 공직사회의 은어 중 하나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셈이다.
올해 1월 채용 전까지 ‘뉴미디어담당관’ 신분이던 김씨는 홍 전 시장의 사퇴로 당연면직 대상이다. 지방별정직의 경우 채용 시 별도 공고 없이 임명될 수 있지만, 임용권자가 퇴직할 경우 직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시가 임기 2년짜리 ‘뉴미디어팀장’ 공고를 새로 내면서 김씨가 선발, 그는 시장 퇴임과 관계 없이 최대 5년을 일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채용에는 10여명이 원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가 후속 공고에서 선발될 경우 임기는 더 늘어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퇴임식이 열린 지난 11일 대구시 산격청사에서 대구 기초단체장들과 공직자 등이 홍 전 시장을 응원하는 등의 내용이 적힌 펼침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이를 두고 홍준표 전 시장은 사퇴 전인 지난 8일 출입 기자들과 만나 “김○○은 내가 앞으로 5년간 신분 보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면서 “처음에 자기가 결심해서 (대구시에) 왔기 때문에 내가 나가면(서) 잘려 나가면 안 되니까 5년 근무할 수 있게 조치 다 해 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있을 때 고생한 사람들은 오늘(8일) 아침까지 전부 ‘부채를 갚는 절차’를 다 해놨다”고 덧붙였다. 부정 채용 의혹과 함께 홍 전 시장이 인사 등에서 막판까지 권한 행사를 했음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홍 전 시장이 (김씨 채용의 부적절성에 대해) 자백하고 간 셈”이라면서 “그에게 부역한 사람은 끝까지 챙겨주고 갔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구시 관계자는 “김씨는 서류와 면접 전형 등을 거쳐 정상적으로 선발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구시 안팎에는 홍 전 시장이 떠나는 시점까지 소위 ‘충성파’를 챙기는 등 공직사회 인사에 영향을 줬다며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구시 한 간부급 공무원은 “그(홍 전 시장)가 수장 자리를 맡을 동안 소위 ‘홍준표 사단’만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나”며 “막판까지 자신에게 충성한 사람들만 골라 ‘알 박기’를 해놓고는 박수를 받으며 유유히 떠나는 모습에 솔직히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홍준표 전 시장이 있을 때 잘 나가던 공무원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공무원 간에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며 “공직사회의 불안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이 14일 대구시 동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안 추진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홍 전 시장의 중도 사퇴로 대구시가 추진하던 굵직한 사업들의 ‘정상 궤도’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두고도 말이 나온다. 정치적 중량감을 앞세운 홍 전 시장이 판을 벌여놓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상당 부분이 마무리되지 못해서다.
지역 최대 현안인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사업의 경우 사업비 마련의 핵심인 공공자금관리기금 지원 근거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다. 대구 군공항 이전과 대구경북 통합, 대구 취수원 이전(맑은물 하이웨이) 등 홍 전 시장이 의욕을 갖고 추진하던 사업 역시 매끄럽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시장직 권한대행을 맡은 김정기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가고 주요 개혁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 추진을 위해 대구시의회와 지역구 국회의원 등과 소통을 강화하고, 공직 생활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지역 주요 현안이 정부 추경 및 대선 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하지만 관료 출신의 시장 대행으로서는 당면 현안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김 권한대행은 이날 기자들에게 대구 현안에 대한 추진 현황 등을 설명한 자료 앞에 ‘관리계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 지역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지난 11일 대구시 산격청사 앞에서 ‘홍준표 퇴임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제공
‘심판론’이 강한 이번 대선에서 정권 교체 시 주요 사업의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는 데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1년 넘게 남았다는 점도 대구시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다. 최근 대구시 안팎에서는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홍 전 시장의 대통령 당선밖에 답이 없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오는 게 현실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11일 퇴임식에서 취재진의 출입을 막고 지역 기초단체장이 대거 참석한 행사를 치렀다.
퇴임식에서 그는 “비록 시장직은 내려놓지만 여러분들의 더 큰 힘이 되어 돌아와 든든한 후원자로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퇴임식 당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 지역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홍 전 시장이) 그동안 있었던 불통행정, 반인권·반민주 행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해 대구를 헌신짝처럼 버려둔 채 떠나간다는 사실에 탄식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대구시당도 “홍 전 시장의 3년 가까운 임기동안 반민주적, 반인권적, 불통행정은 파면된 윤석열(전 대통령)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면서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공직자로서 기본적 자질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