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제아 아기 기후 소송 청구인과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세계 정부와 기업들의 기후 대응이 이상기후로 인한 재앙을 막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기후소송이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국내 기후소송 첫 변론 이후 1년이 흐른 14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서울 정동 구세군중앙회관에서 ‘전략적 기후소송에 관한 글로벌 워크숍’을 열고 세계 곳곳의 기후소송 현황과 의미를 짚었다. 지난해 4월 국내에서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개변론이 처음으로 열렸다. 헌법재판소는 2030년까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을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케냐 국가환경재판소는 2019년 6월 라무 석탄화력발전소에 건설 허가를 내준 국가환경관리청의 조치를 무효화하고 발전소 건설을 중지시켰다. 재판소는 국가환경관리청이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미비했으며 허가 발급 전 적절한 시민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 소속 데일 파스칼 온얀고 변호사는 “국가가 대규모 발전 사업을 허가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과 과정에서 공공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라며 “개발도상국에서도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이 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알린 중요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린피스가 14일 서울 중구 구세군중앙회관에서 진행한 ‘전략적 기후 소송에 관한 글로벌 워크숍’에서 캠페이너, 변호사 등 패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카리브해에 있는 네덜란드령 보네르섬 주민들은 지난해 1월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에 부실하게 대응해 주민들의 생명과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네덜란드 대륙에서는 기후 관련 정책이 오랫동안 계획·시행돼 왔지만 보네르섬에는 이 같은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식민지 역사와 구조적 불평등을 고려한 기후정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국가뿐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됐다. 필리핀 보홀 지역 주민들은 2015년 비피, 쉘, 셰브론 같은 세계 최대 석유·석탄·시멘트·광물 기업들이 생명권, 건강권, 주택권 등을 침해한다며 필리핀인권위원회(CHR)에 청원했다. 인권위원회는 기업들도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다는 조사결과를 2022년 5월 내놨다. 기업의 기후 책임을 조사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일본 청년들은 지난해 8월 일본 주요 화력발전 회사들에 탄소 감축 의무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만에서는 과거 태풍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중심으로 2023년 만들어진 ‘기후변화대응법’이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리고 미래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법안이라는 내용의 청원을 지난해 사법부에 제출했다.
채혜진 그린피스 법무담당자는 “이번 워크숍은 시민들이 법의 힘으로 직접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줬다”며 “기후소송 흐름은 한국에서도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