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초 발표보다 2조원 증액한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재해·재난 대응에 3조원,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에 4조원,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에 4조원 등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추경안이 빠른 시간 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 초당적 협조와 처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추경은 대규모 재해나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편성한다. 경제가 곤두박질치기 전에 돈을 풀어 내수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경 편성에 매우 소극적이던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타이밍’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추경 편성을 주장한 게 지난해 12월이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추경 편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자영업자들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대표적 내수 업종인 숙박·음식점업은 역대 최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가 1년 전보다 20만명 넘게 줄었고, 일도 구직활동도 안 하는 청년이 45만5000명이다. 그런데도 최 부총리는 몇달이나 늑장을 부린 것에 사과 한마디 없이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신속처리를 요구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추경 규모도 문제다. 극심한 내수 침체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까지 덮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터다. 경제·민생 위기를 고려하면 12조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조원을 쏟아도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는 0.2%포인트에 불과하다. 정치권은 그동안 30조원 이상을 주장해왔고, 한은도 대형 산불이 나기 전에 최소 15조~20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지만 ‘정치 리스크’는 여전하고, 미·중 패권 전쟁은 한국의 금융·실물 경제에도 초대형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감세와 긴축재정을 전면에 내건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건전재정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지금은 과감하게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할 때다. 재정적자가 우려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걱정된다면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당리당략을 떠나 추경 규모를 늘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기 바란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1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