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4일 서울 공관에서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 회의를 주재하면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 등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협상 전면에 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할 뜻도 내비쳤다. 통상 협상은 국익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지만 서두르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한국에 불리할 뿐인 협상에 속도를 내다 졸속 타결로 국익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더구나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 널뛰면서 불확실성도 크다. 차기 정부 출범까지 50일도 안 남은 권한대행 정부가 조급하게 결정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한덕수 대행은 지난 14일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하루이틀 사이에 알래스카 LNG와 관련해 한·미 간 화상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양국 간 통상 협상의 ‘우호적 모멘텀’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해 해결점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는 사업성이 불투명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라곤 해도 당장의 손익을 다투는 상품관세 협상에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선물 하나 주는 것으로 트럼프 정부 관세정책이 바뀔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순진하고 안일하다.
한 대행은 9일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적용 90일 유예가 “(8일) 자신과의 통화 이후”라고 자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당일 밤 “전 세계가 ‘내 엉덩이에 키스’하려고 전화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그날 트럼프와 전화한 사실이 공개된 외국 정상은 한 대행뿐이다. 그 결과 한국은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꼽히고 있다. 자청해 트럼프의 ‘봉 노릇’을 하려 한 셈이다.
한 대행이 협상에 자신이 있다면 국민 우려가 큰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부터 15일 발효되기 전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한 대행은 “어느 점에서 어떻게 협상을 진행해갈 지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세히 설명했다”고 했다. 협상을 한다면서 미리 패부터 보여준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미국이 ‘먼저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고 압박해도 “더는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분석해 임하고 싶다”며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주목해야 한다.
권한대행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신중과 절제’의 미덕이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임시관리자가 차기 정부에 부담이 될 합의를 하는 것은 월권이다. 혹여라도 한 대행이 “마지막 소명” 운운하며 속도전 협상에 나선 속내가 국민의힘일각의 대선 차출론을 염두에 둔 ‘치적쌓기 조급증’은 아니길 바란다. 그 경우 한 대행은 사욕으로 국가를 위기에 빠트린 역사적 죄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 대행은 자신이 가진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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