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사람을 평가하는 일](https://img.khan.co.kr/news/2025/04/15/l_2025041601000456400046121.jpg)
관중은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者)로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힘에 의한 패도가 아니라 덕에 의한 왕도를 이상적인 정치로 추구해온 유교와 성리학의 관점에서 소환된 관중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150여년 뒤인 공자의 시대에 이미,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 규를 환공이 죽였을 때 따라 죽지 않고 오히려 환공을 도왔다는 행적 때문에 인(仁)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지목되곤 했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함으로써 약육강식의 침탈을 멈추게 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인(仁)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관중이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백성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그가 없었더라면 중화 문명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며 칭송했다. 작은 신의를 위해 헛된 죽음을 택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의리마저 상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관중의 공적을 크게 인정한 것이다.
공자가 관중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 식견이 얕고 규모가 좁아서 원대한 일을 도모할 그릇은 못 된다고 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하기는커녕 안락하게 부귀를 누리고 예를 잘 알기는커녕 분수를 넘어서는 일을 자행한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맹자가 자신을 관중과 비교하는 제자를 나무라며 관중이 세운 공적마저 보잘것없다고 무시한 것이나, 후대의 성리학자들이 왕도정치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과는 달랐다. 공자가 그들보다 원칙에 덜 충실해서가 아니다. 한곳에 고착되지 않고 두루 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오랫동안 통치자를 위해 필요한 덕목이었던 ‘사람 평가하는 일’이 이젠 모두의 몫이 되었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게 하는 시간이 다시 왔다. 더구나 지난번의 주권 행사가 참담한 사고로 이어지고 난 뒤에 치르는 선거다. 갈라쳐도 좋을 만큼 단순명쾌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나침반 바늘처럼 파르르 떨며 다시 길을 찾아갈 일이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