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복선전철 붕괴 사고 현장에서 추가 붕괴 우려와 기상악화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중단돼 있다. 이준헌 기자
올들어 서울 강동구, 경기 광명시 등 도심에서 대형 지반침하(싱크홀) 사고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신안산선 공사현장 사고처럼 전례 없이 큰 규모의 싱크홀도 발생 중이지만 정부 차원의 통합대응은 ‘실종’된 상태다.
지반침하 문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됐지만 아직 법적인 ‘재난’에 해당하지도 않는데다, 2022년 시행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탓이다.
15일 오전 6시45분쯤 광주 동구 지산사거리 도시철도 2호선 공사현장 인근 도로에서 지름 90㎝, 깊이 1.7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동구청은 싱크홀 주변에 대한 통행을 통제한 뒤 긴급 복구 작업을 벌였다. 현장을 지나던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자칫 큰 인명피해가 날뻔한 사고였다.
앞선 13일에는 부산 사상구 학장동 횡단보도에서 가로 5m, 세로 3m, 깊이 5m 규모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사고 지점 인근에서는 지난해 9월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2대가 8m 아래로 추락한 사고가 발생한 바있다.
신안산선 싱크홀 이후…휴교령 따로, 대피령 따로
대형 싱크홀 사고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각 지자체 등 유관기관이 많지만 ‘각자도생’식으로 대응에 나서면서 사후 대처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1일 발생한 신안산선 공사현장 붕괴사고다. 전례 없이 큰 규모였고, 사고 12시간 전부터 이미 붕괴가 우려돼 도로 통제 등이 이뤄졌는데도 결국 인명피해(실종 1명)가 났다.
현장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초등학교는 사고 당일 학생들이 정상등교해 수업이 진행됐다. 붕괴 우려로 단축수업을 했다지만, 사고발생 시각 30여분 전까지 학생들이 하교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찔한 상황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틀 뒤인 13일에야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
주민들은 한차례 대피 뒤 복귀했다가 다시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광명시는 사고 발생 2시간 여 만인 11일 오후 5시23분 인근 아파트와 다가구 주택 및 상가에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가 약 7시간 뒤 해제했다. 광명시는 그러나 대피령을 해제한지 하루만인 13일 오전 11시 사고지점 반경 50m 이내에 위치한 주택 12가구(38명)와 상가 4곳에 추가 주민대피명령을 내렸다.
광명시 관계자는 “국토부 등과의 회의결과 추가붕괴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싱크홀은 ‘재난’ 아냐”…대규모 인명피해땐 어쩌나
신안산선 붕괴 사고의 경우 싱크홀 주무부처인 국토부에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돼 뒷수습을 하고 있다. 통상 대규모 자연재해나 사회재난 상황 시 정부 차원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설치되지만 싱크홀은 법률상 ‘재난’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재난유형과 그 유형별로 예방·대비·대응·복구를 주관하는 재난관리주관기관을 규정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에는 싱크홀 혹은 땅꺼짐이나 지반침하 사고는 빠져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이태원참사와 같은 다중운집인파사고를 포함해 27종의 ‘사회재난’ 유형을 신설한 바 있는데, 싱크홀은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도심에서 대형 싱크홀로 인명피해가 대량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제도를 손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찬우 한국건설사회환경학회 회장은 “정부에서 싱크홀 사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국토부를 재난관리주무부처로 하는 재난유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싱크홀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피해 규모는 어떤지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필요성이 있다면 다중운집인파사고처럼 사회재난에 포함해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별법 2022년 시행됐지만, 지자체들 “관리에 한계”
정부가 싱크홀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국토부가 지반침하 사고 집계를 시작한 2014년 부터다. 같은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작됐고, 2022년에는 싱크홀 예방·관리 등을 규정한 위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도 시행됐다.
특별법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특별법에서는 국토부가 국가 차원의 지하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면 지자체가 관내 지하안전관리 계획을 개별 수립해 시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와 지자체간 유기적인 협조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강동구 싱크홀만해도 국토부가 지난해 사고지점 주변에 지반 침하가 있다는 사실을 서울시에 통보했음에도 제대로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됐다.
지자체는 한정된 인력과 예산, 장비, 부족한 전문성 등을 들어 싱크홀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관내 지하 공사현장만 수 백여개에 달하는 서울시만해도 전담인력이 총 16명이고, 이 중 행정직을 제외한 현장인력은 9명에 불과하다.
시 관계자는 “모든 지하 공사 현장에 인원을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외부용역을 통해 관리를 맡긴다”며 “최근 싱크홀 문제가 확산돼 내부 인력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데, 예산이 필요한 문제라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에서 15일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싱크홀 사고 원인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하수관로 파열 문제 역시 부족한 지자체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50년 이상 노후화된 하수관이 30%를 넘는 등 타 지역 대비 교체 수요가 많아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지난달 환경부에 국고 보조 요청을 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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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지난해 12월 ‘제2차 국가지하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지반침하 고위험지역 관리 미흡, 지자체의 전문성과 인력·예산부족, 연구개발 저조 등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타 지역 대비 유독 도심지역 싱크홀은 발생이 줄지 않고있는데, 이는 지하 개발 사업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증거”라며 “노후 매설물 관련 예산 확충, 공사현장 관리감독 강화, 지하안전 조사인력 확충 및 점검확대 등 개선해야할 점이 많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