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한 이민자, 자진 출국하면 데려올 수도”
‘대규모 추방’ 공포전과 맞물린 ‘자진 추방’ 정책
합법 이민자엔 “테러리스트” 딱지 붙이고 모르쇠
정부 입맛 따른 선·악 구분…“수사적 표현 못 믿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진해서 미국을 떠나는 ‘선한’ 불법 이민자는 합법적으로 재입국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얼핏 강경한 이민 정책에서 한발 물러선 발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민자를 정부 입맛에 맞게 ‘갈라치기’ 하는 방식으로 추방 작업에 속도를 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현재 정부는 “살인범”들을 미국 밖으로 내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다른 불법 이민자에 대해선 “자진 추방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좀 주고 비행기표도 줄 것”이라며 “만약 그들이 선한 사람이고, 우리가 그들이 돌아오길 바란다면 가능한 한 신속하게 데려오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불법으로 체류 중인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떠났다가 합법적 허가를 받아 다시 미국에 돌아오길 바란다는 취지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조치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국의 호텔과 농장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구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농업과 서비스업이 이민자가 제공하는 저임금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AP통신은 불법 이민자를 범죄 집단으로 몰아가며 대규모 추방을 공약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기조와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엘살바도르 교도관들이 16일(현지시간) 테콜루카의 테러 구금센터로 미국에서 추방된 베네수엘라인들을 이송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정부 제공·AP연합뉴스
그러나 ‘자진 출국’은 트럼프 정부가 밀어붙이는 반이민 정책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힌다.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 추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임시체류 허가를 받은 이민자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된 사회보장번호(SSN)를 박탈하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떠나라’는 메시지를 강조해왔다. 미국에서 버티면 험한 꼴을 겪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스스로 떠나면 언젠가 미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구슬리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에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런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 광고 영상도 만들어졌다. 해당 영상에서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불법 체류자는 발각되어 추방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지만, 지금 떠난다면 돌아와서 자유를 누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NPR은 이런 광고를 위해 트럼프 정부가 지난달 43개 방송국 등에 약 280만달러(약 39억8000만원)를 지출했으며, 스페인어 라디오 광고 등에도 37만3000달러(약 5억3000만원)를 썼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직후 조 바이든 전임 정부가 고안한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의 이민 사전 인터뷰 예약 애플리케이션 ‘CBP 원(One)’을 종료하고, 앱 명칭을 ‘CBP 홈(Home)’으로 바꿔 자발적 출국 의사를 전하는 통로로 바꾸기도 했다. 시민단체 이민자가족보호연합은 “이민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수사적 주장을 알아차릴 만큼 현명하며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 체류할 합법적 지위를 가졌는데도 ‘행정상 오류’로 추방된 엘살바도르 국적의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아내 제니퍼 바스케스 수라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연방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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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합법적 체류 지위를 갖췄는데도 ‘행정상 오류’로 추방된 엘살바도르 국적 이민자를 아무 근거 없이 “테러리스트이자 MS-13 갱단원”이라고 우기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행태를 보면 ‘자진 출국 이후 합법적 재입국 가능’이란 주장의 신뢰도는 떨어진다. 미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정부가 지난달 15일 범죄 조직원으로 지목해 엘살바도르 수용소로 추방한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에게 범죄 전력이 전혀 없다며 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폴라 시니스 미 메릴랜드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이날 법원이 처음 송환 명령을 내린 지난 4일 이후 10일 이상 지나는 동안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정부가 악의적으로 은폐 및 지연 전략을 펴면서 법원 명령을 무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사건과 관련된 정부 관계자들이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