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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 때

입력 2025.04.16 20:05

수정 2025.04.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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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도시의 사랑법>(2024)을 뒤늦게 봤다. 회식 자리에서 한 남자는 두 손을 모으고 웃는 직장 동료에게 그렇게 웃으니까 “게이 같다”고 핀잔을 준다.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함께 웃지만,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재희’는 그에게 따진다. 게이 같은 게 도대체 뭐냐고, 게이면 어때서 그러느냐고.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농담이니까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지 말라고 그녀를 만류한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다그침에 재희는 “그냥 쟤한텐 그게 목숨 같나 보다 하시면 안 돼요?”라고 되받아친다.

그 인상적인 장면을 보며, ‘웃자고 한 얘기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라는 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말이 자주 쓰인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목숨만큼 중요한 문제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뒤 그 조소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애먼 일에 진 빼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일이 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잔인한 조롱과 무례한 요구가 소소한 유머로 둔갑하는 과정을 살피면서 깨닫는다, 때로는 목숨 걸고 달려들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농담이 또 다른 누군가를 죽게 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난감한 상황에서는 반사적으로 웃어버리는 사람이다.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고, 웃자고 한 얘기는 웬만하면 꿀떡꿀떡 넘기는 게 습관이 된, 좋게 말하면 무던하고 나쁘게 말하면 굴종적인 인간이다.

그런 내게도 도무지 웃어넘길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속도 없이 말려 올라가곤 하던 가벼운 입꼬리마저 굳어버렸다. 어느 행사의 뒤풀이 자리였다. 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작가분들만 계셨던 자리에 앉아 나는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한 분이 “성 작가는 착해 보이니까 아무래도 몇몇 여성 작가들처럼 무시무시한 글 안 쓰지?”라고 넌지시 물었다.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문제는 예시로 거론된 여성 작가들이 내가 무척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 작가라는 점이었다. 여성 문학가들이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누군가에겐 드세고 사나운 것으로 여겨진다니 착잡했다. 평소라면 웃어넘겼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반문했다. “무시무시한 게 어떤 건데요?” 일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진짜 궁금해서요.” 예상대로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기도 했다. 먼저 가보겠다고 하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자리를 나섰다.

유머는 삶을 즐겁게 하고 웃음은 세상을 한층 환하게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조롱하려는 의도를 가진 유머는 대체로 위보다는 아래를 향하게 되고, 이때 웃어넘기기를 강요받는 이들 대다수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웃는 자와 우스워지는 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면, 그 농담은 일방적인 폭언에 가까운 것이다. 모욕하는 발언을 적절히 지적하면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 재미를 모르고 굴욕감만 잘 느끼는 사람, 공연히 시비를 걸어서 분위기를 흐려놓는 불편한 사람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웃어넘기라는 요구의 부당성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유머를 위해서라면 공격당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질 위험이 있다. 록산 게이는 저서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2024)에서 “조롱받는 자가 둔감할수록 공격하는 자들은 멋대로 지껄이고 행동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기에 농담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모욕으로 느껴질 때 이에 반응하고 대응할 권리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혹시 나에게만 웃기는 말은 아닌지 점검해야겠다. 반대로 나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무엇이 조롱거리가 되었다면, 웃음을 거두고 무례를 짚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왁자한 웃음 속에서 고요히 죽어가지 않도록.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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