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이돌의 본령은 보이그룹이다. 서구에서 보이밴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남자 아이돌은 사실 현대 팝 산업의 초창기부터 존재해왔다. 비틀스는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파격적인 무대 매너와 귀여운 머리 모양 덕에 수많은 ‘오빠부대’를 거느리고 다닌 아이돌의 전형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흑인 비틀스라고까지 불렸던 잭슨 파이브를 통해 마이클 잭슨이라는 20세기 최고의 팝스타가 탄생했고, 왬·뉴키즈온더블록·엔싱크·조너스 브러더스·원디렉션 그리고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팝 아이콘의 계보는 보이그룹의 계보와도 사실상 일치한다.
이는 K팝의 역사만을 따로 떼어놓고 살펴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로지 댄서 출신들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그룹 소방차를 필두로 서태지와 아이들, H.O.T., 동방신기, 빅뱅, 엑소 등등… K팝 시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보이그룹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업적으로 봤을 때 보이그룹의 장점은 너무도 명확하다. 가장 적극적인 소비자, 요즘 말로 파워 컨슈머인 젊은 여성을 팬으로 삼기에 유리한 까닭에 투자 대비 가장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상업적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이나 무대의 측면에서도 걸그룹보다 더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주곤 했는데, 이는 대중성의 측면에서 일정 부분 손해지만 오히려 취향을 바탕으로 공고한 팬덤을 규합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한때 K팝 산업에서 ‘인기는 걸그룹이 있지만 돈은 보이그룹이 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보이그룹은 매력적인 포맷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K팝에서 보이그룹은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K팝의 베스트셀링 그룹들 중에는 스트레이키즈나 세븐틴과 같은 보이그룹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방탄소년단 이후 후발주자들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음반시장 불황,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적인 위기하에 기획자들이 제작비가 높은 보이그룹 대신 곧바로 대중적인 성공이 용이한 걸그룹에 집중하는 것도 주된 이유다. 게다가 과거에는 팬덤을 규합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걸그룹이 다양한 주제 의식과 이미지를 통해 여성 팬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보이그룹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K팝 팬덤의 취향에 의존하는 보이그룹의 하위문화식 접근방식이 진입장벽을 만들어 결국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는 데 실패한 것은 물론 진부한 콘셉트를 되풀이하며 새로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브와 뉴진스 등을 필두로 걸그룹에 새바람이 불어닥친 것처럼, 보이그룹에도 새로운 접근방식과 미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근 데뷔한 보이그룹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음악을 들으며 오랜만에 산뜻함을 느꼈다. 난해한 서사나 세계관이 없고, 음악은 친숙함과 세련미 사이를 절묘하게 가로지른다. 타이틀곡 ‘내 안의 모든 시와 소설은’은 아련한 서정미와 함께 R&B 황금시대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그루브를 담고 있어 아이돌 음악이라면 믿고 ‘거르는’ 음악 팬들이나 감상용 K팝 음악을 찾는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가 보편화한 K팝에서 ‘너를 담은 이 영화에 나의 가사가 자막이 돼’ ‘빗속에서 춤추는 법’과 같은 문학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 참신하며, 진부한 고음과 랩 파트 대신에 아름다운 선율과 ‘정서’에 집중하는 음악들은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 팀이 새로운 보이그룹 시대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시스템과 진부한 상업적 전략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