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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없는 교차로, 누가 먼저 가야 하나

  •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교차로에서는 신호등이 누가 먼저 가도 되는지, 즉 통행우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그런데 다니다 보면 신호등이 없거나 통행우선권을 알려주는 아무런 장치나 표시가 없는 교차로가 많다. 집 앞 골목길이나 생활권 이면도로에서 마주치는 교차로의 상당수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법에서는 이러한 교차로를 “교통정리가 없는 교차로”라고 부른다.

교통정리가 없는 교차로에서 통행우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도로교통법 제26조가 이를 말해준다.

통행우선권을 가지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교차로에 먼저 들어온 차, 더 넓은 도로로부터 진입하는 차 그리고 교차하는 우측 도로의 차가 우선이다. 따라서 운전자는 이들 차에 진로를 양보해야 한다. 운전자들이 이 같은 내용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한 이런 규정이 교통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에는 사실 의문이 든다.

교차로에 진입할 때, 운전자는 지나가는 보행자나 자전거가 없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다 법에서 정한 통행 우선순위까지 운전자가 바로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누가 먼저 교차로에 들어왔는지, 도로의 폭이 어디가 더 넓은지 등을 운전자가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주문이다.

도로교통법 제26조 규정은 교통사고 후 잘잘못을 따질 때, 다시 말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누구에게 과실이 더 많은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되지만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로는 미흡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자체 분석한 결과, 이런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연간 약 6만건에 이르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냥 무시하고 내버려두기에는 꽤 많은 수치다. 그렇다고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신호등을 달자니 교통량이 별로 없어 비효율적이고, 보행자는 다니는 차도 없는데 쓸데없이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신호등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 우선하는 도로와 양보해야 하는 도로를 사전에 지정하는 방법이다.

즉 교차로에서 누가 양보해야 하는지를 ‘교통안전표지’로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 김영찬 원장이 최초로 이름 붙인, 이른바 ‘표지 교차로’가 그 돌파구이다. 양보해야 하는 차의 운전자에게 ‘일시 정지’ 또는 ‘양보’라는 정보로 주는 방식으로, 통행우선권을 교통안전표지로 알려주는 교차로인 셈이다.

일시 정지는 통상 3초로 본다. 단순히 3초간의 차량 정지가 아니라 잠시지만 운전자가 차를 완전히 정지하고 보행자나 다른 진입하는 차를 살핀 후 교차로에 안전하게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 최근 일시 정지(止まれ·도마레) 표지판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 시가현(2022년)에서는 이를 도입한 뒤 사고 건수가 약 12% 감소하였고, 나라현(2021년)에서는 장소별로 적게는 37%, 많게는 약 79% 사고 건수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은 정지 또는 양보 표지판으로 운영되는 교차로(Stop controlled intersection & Yield controlled intersection)를 오래전에 도입해 법으로 엄격히 강제하면서 거의 모든 운전자가 교차로에 일시 정지 후 진입하는 것이 이미 교통문화로 자리 잡았다.

늦었지만 우리도 시작해야 한다. 많은 예산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일시 정지’ 또는 ‘양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느낄 불편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안타까운 희생을 줄이고 보행자가 더 안전하게 건너가는 방법이 가까이 있다. 이른바 표지 교차로가 또 하나의 안전한 교통문화로 자리하도록, 국민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할 뿐이다.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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