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재미있는 장면이 잠깐 지나간다. 주인공 두 명이 시골길을 가다 물을 얻으려고 농가에 들른다. 미국인 친구가 벽에 걸린 그 옛날 독재자 무솔리니의 초상화를 보고 몹시 놀라워한다. 그러자 이탈리아 친구가 ‘쿨’하게 대꾸한다. “여기 이탈리아잖아.”
1945년 이탈리아 파시즘이 패망하면서 무솔리니가 최후를 맞이하고 역사의 단죄를 받았건만, 그로부터 무려 40여년이 지난 후에도 독재자의 초상화가 버젓이 걸려 있는 모습은 정녕 놀랍다.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단순히 한적한 농촌의 고립무원 때문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특성으로 설명해볼 법도 하다.
그러나 역사의 지속이라는 시각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패망했다고는 하나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지자가 무솔리니의 시신을 가져간 사건은 기괴하다 못해 공포스럽다. 범인은 징역을 살았지만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당시 집권당은 파시스트들의 지지를 의식하여 무솔리니의 시신을 그의 고향 프레다피오에 안장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곳은 곧 네오파시즘의 성지가 될 터였다. 이렇게 보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틋함을 많이들 말하는데, 공정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섬뜩함도 말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파시즘은 패망하자마자 부활했다. 파시즘의 계보를 잇는 이탈리아 사회운동당이 종전 직후 결성되었는데, 이 정당은 그 이름에서도 보듯이 이탈리아 파시즘 최후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체제인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일명 살로공화국)의 계승자임을 내세웠다. 그리고 1948년 총선에서 상당한 득표수를 기록하며 원내 의석을 차지했다. 그 후 사회운동당은 민족동맹으로 변신하며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민족동맹의 당수는 무솔리니를 20세기 최고의 정치가로 추켜세웠다가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파시즘 대신 포스트 파시즘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파시즘의 조직적·인적 연속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후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이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졌기에 이를 언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치부되곤 했다. 한 저명한 파시즘 연구자는 파시즘을 변호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자들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입장은 파시즘에 찬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파시즘에 반대하는 ‘반-반파시즘’일 뿐이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그에게 파시즘은 단 한 번 존재했고, 이제는 사라졌으며, 그래서 반파시스트들이 죽은 파시즘의 망령을 불러내는 것은 수상쩍은 일이었다. 그렇게 파시즘이라는 말은 금기시되어 다른 표현들로 대체되거나 접두사 ‘네오’나 ‘포스트’가 붙어 변형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시간이 더 많이 흘렀는데도 파시즘이 잊히기는커녕 더 생생해지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또 우리들 곁에서 파시즘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들이 점점 더 자주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파시즘이라는 원래 이름을 되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위의 영화 제목을 바꾸어 ‘너를 너의 이름으로 부른다’고나 할까.
물론 오늘날의 현상들은 고전적 파시즘과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가령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폭력을 공공연한 정치의 수단으로 삼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정말 그러한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게 요즘의 비극적 상황이지만, 기본적으로는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이탈리아의 양심을 대표한 프리모 레비는 꼭 노골적인 폭력과 공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파시즘과 유사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시대는 그 자신의 파시즘을 갖고 있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