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진보정책연구소 조사 결과
여성 의류 관세가 남성 의류보다 3%포인트 높아
미 여성 한벌 당 1달러 더 지불
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줄 것

뉴욕 맨해튼의 한 의류 매장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이 미국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6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국에 부과한 10%의 기본관세와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 등을 언급하며 “여성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 쉽게 증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CNN은 미국의 관세 정책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으며 여성 의류 관세는 남성보다 약 3%포인트 높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격차로 여성 물품에 더 부과되는 비용을 ‘핑크 관세’로 부르는데, 동일한 여성용 제품을 남성용보다 더 비싸게 파는 ‘핑크 택스(세금)’와 유사하다.
진보 성향 미국 싱크탱크인 진보정책연구소(PPI)의 무역·글로벌시장 담당 국장인 에드워드 그래서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의류에 부과되는 관세 격차로 인해 미국 여성들은 한 벌당 평균 1달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연간 총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조사 결과 2022년 여성 의류 관세율은 평균 16.7%로, 남성 의류 평균 관세율 13.6%보다 3.1%포인트가 더 높았다. 개별 품목별로 살펴보면 2017년 여성 정장에는 15.1%의 관세율이, 남성 정장에는 13.3%의 관세율이 적용됐다. 여성 속옷에는 12.8%의 관세율이, 남성 속옷에는 8.6%의 관세율이 적용됐다.
미국 의류·신발 협회 회장 스티브 라마르는 “트럼프 대통령은 막대한 신규 관세를 부과하면서 역사적으로 퇴보적이고 여성혐오적인(misogynistic) 세계 자유무역 시스템의 특징을 해결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핑크 택스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
‘핑크 관세’의 관행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다. 1930~1940년대에는 여성 의류 산업 규모가 작았지만, 남성 의류 산업은 규모가 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당시 미국 섬유·의류 업체들은 남성 의류에 대한 무역장벽 철폐를 위한 로비 활동에 집중했다. 지금의 ‘핑크 관세’는 이런 무역 체제의 역사가 이어져 온 탓이라고 CNN은 전했다.
아식스,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등은 2007년 이같은 관세 정책 폐지를 위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했지만, 법원은 관세 격차가 차별적 의도가 아니라며 기각했다. 올해 리지 플레처 하원의원(민주·텍사스)과 브리트니 페터슨 하원의원(민주·콜로라도)은 관세가 여성 등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토록 하는 ‘핑크 관세 연구법’이라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꼭 여성에게만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리 테일러 텍사스주 A&M 대학교 공공서비스·행정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남성 의류에 대한 관세 상한선을 높여 의도치 않게 관세의 성별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여성이 평균적으로 의류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궁극적으로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CNN은 내다봤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위치한 섬유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류 대부분이 수입품인 현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저소득층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예일 예산연구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의류 가격이 64%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CNN은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에서 의류나 생활필수품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고소득층보다 더 높기 때문에 이들 물품에 붙는 관세가 가계에 즉각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고급 의류보다 저가 의류에 상대적으로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는 점도 저소득층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미국에서는 원단에 따라 다른 관세율이 부과되는데, 울·캐시미어·실크와 같은 고급 원단의 관세율이 저가 의류나 운동화 제작 등에 사용되는 면·폴리에스터·나일론보다 더 낮다고 셩 루 미국 델라웨어대 패션·의류학과 교수는 설명했다.
CNN은 트럼프의 관세 인상으로 기본 의류 가격이 사치품보다 더 빠르게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본 의류는 마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높은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가격 인상 폭이 고급품보다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